"집에서 자기 싫어. 나 다른 데서 잘래."
아빠의 폭력이 이어지던 어느 날, 엄마에게 말했다. 나름 오래 고민하다가 꺼낸 말이었다. 엄마 곁을 떠나기 싫던 초등학생이 엄마가 없는 곳에서 자야겠다고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다.
술에 취한 아빠는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난 밤마다 자는 척을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술 냄새를 풍기며 나를 깨웠다. 술기운에 웃으며 다가오다가도 어느 순간 표정이 바뀌었다.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며 화를 냈다. 화만 내면 다행이겠지만, 그 뒤엔 항상 폭력이 따라왔다. 손으로 때렸고, 회초리로 때렸고, 각목으로도 때렸다. 이렇게 맞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기 싫어서, 울면서 잘못했다고 말하는 내가 비참했다. 작은 몸집에 힘도 약한 내가 싫었다.
약한 아이를 때리는 어른이 나쁜 놈인데, 난 아무런 반항도 못하는 내가 미웠다. 나쁜 어른의 희생양이 된 내가 운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하필 이 집에 태어난 걸까. 나도 다정한 부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커지다 보니, 엄마에게 다른 데서 자고 싶다는 말을 하게 됐다.
그런 내 말을 엄마도 쉽게 넘길 수는 없었나 보다. 얼마 후, 난 학교 근처에 있는 엄마 지인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같은 동네에 살던 이모라서 낯설지는 않았다.
학기 중이었는지, 방학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며칠을 신세 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모네 집에서 지내는 동안 마음이 편안했던 것만 기억난다. 술 취한 사람이 없었고, 때리는 사람이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지 않아도 됐다. 자는 척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편안한 밤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평생 이모네 집에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난 엄마, 아빠가 있는 우리 집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어른이 되어 독립하는 것뿐이다. 난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된 지금이 좋다.
난 착한 어른이 되려고 매일 노력한다.
약한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증오하던 어른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평생 노력하며 살 거다.
그 시절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