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모의 육아 에세이
2015년,
내 아이의 미운 세 살이 시작되었고
난 성악설에 대해서 심각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미운 세 살의 '미운'이라는 말은
아이의 행동이 미워진 때가 아니라
아이가 '미운'이라는 감정을 알 게 된 시기를 말하나보다.. 하고 알게 되기도 했고.
화를 내고
신경질이 나면 장난감을 던지고
뭔가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있는대로 고함을 지르고
옆에 인형에게 때찌!를 내던지는!
오만 방자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세 살.
마음의 준비 (?)를 하고는 있었지만
그저 '지나가는 시기'라고만 여기기엔 뭔가 부족하다.
내 아이니까.
듣고 보고 흘릴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나와 내 아이에기 닥친 중요한 시기니까.
아이의 버릇과 예절에 관한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아이가 이렇게 한꺼번에 알게 되는
여러가지 감정을 혼란스러워 할 것 같고,
또 그 감정을 표출하는 과정을 어떻게 올바르게 잡아주어야 할지가
새로운 숙제로 다가선 느낌이랄까.
분명 아직은 표현은 자유롭지 못한 아이의 내부에
독이 되어 쌓이지 않도록
마음껏 감정을 쏟아내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부정이든 긍정이든, 일단 뱉어내야하고
그래야 엄마는 그 감정을 같이 들여다보고 읽어 줄 수있으니까.
하지만
그 감정을 표출함에 있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문제와 맞닥뜨리면
거기부터 초보 엄마의 번뇌는 새로이 시작된다.
아이가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장난감을 던졌는데 그 장난감에 다른 아이가 다칠 수도 있고
물거나 때리는 등의 스트레스 표현이
공동체 안에서 드러날 때에는 여지없이 훈육이 필요한데
아직 훈육을 엄히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의사소통.
힘들다는 느낌이 아니라
어렵다는 생소한 느낌.
그저 먹이고 입히는 게 다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이 중심을 잘 내리고 자랄 수 있게
기반을 다져주는 부모의 역할이
아직 철딱서니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나에게
이다지도 버거운 일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피타고라스의 정의같은 거 말고
심리학이나 육아의 기본 같은 거 좀
과목에 넣어주지.
그렇게 하루하루
부족한 엄마의 모습으로
다만 최선을 다해 달리고
아이를 재우며 피니시 라인을 끊을 때 드는 생각은,
그래도,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은
이 아이를 품에 안은 일이라는 것.
아직 제 본능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더 없이 소중한 내 작은 아기를 안은 일.
자면서 배시시 웃어주는 얼굴에
내가 또 졌다.
종일의 수고와 몇 시간의 번뇌가
그 미소 한 번에 녹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