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모의 육아 에세이
요즘 가위질 삼매경인 아이.
종일 가위를 놓지않는다.
작년 겨울,
직선 오리기를 알려주면서 시작된 가위질인데
올 봄 들어서면서 어른 가위로 넘어가더니
손에서 가위를 놓지않는다.
싹둑싹둑 자르는 재미에 빠진 아이는
모든 걸 다 잘라대느라 여념이 없다.
(다행히도 그림책만 빼고)
교육용 브로마이드,
토리우리 교재 표지같은
짱짱하게 코팅된 종이류를
자르는 걸 가장 좋아한다.
적당한 손 힘과
약간 묵직하게 싹둑 잘려나가는 쾌감을 알게 된 아이는
심지어 플라스틱 장난감에도 일단 가위를 들이밀어본다.
할머니 성경책도 하나 해치웠고(ㅠㅠ)
김에 들어있는 방습제도 모두 잘라 흩뿌려놓고
(안 먹기 다행이다...)
주방매트는 안잘리니 가위 끝으로 뚫어놨다.
무슨 흡혈귀 잇자국도 아니고...
쫑긋하게 뚫린 두개의 구멍에 실소만 나온다.
휴지, 편지지, 광고지 등등
그외에 오만 걸 다 오려대는 아이.
엄마 머카락도 한 번 달려들다 미수에 그쳤다.
종이를 아주 미세하게 잘라놓고 소꿉 그릇에 담에 국수먹으라고 하거나
광고지에 맘에 드는 숫자나 그림을 테두리따라 잘라놓고 간직한다.
어디선가 제기 그릇을 꺼내와
장미꽃을 잘라
소담스럽게 담아 놓고
"엄마 밥 먹어야죠!" 하는 아이.
이럴게 가위질 삼매경인 아이 덕분에
온 집안이 종이 조각 투성이다.
그런데도
청소를 할 때면 차마 그냥 쓸어버려지지가 않는다.
그 조각들을 살펴보다보면
유난히 정성껏 자른 조각이 있다.
서툰 솜씨로 동그라미를 오린 조각 안에는
숫자 3이 씌여져 있다.
어떤 것들은 광고지에서 오려낸 음식 사진이 있다.
이런 걸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풉!하고 웃음이 난다.
그런 어줍잖은 것들을 들여다보노라면,
내어린 시절도 한 조각 떠오른다.
내가 살던 작고 낡은 그 동네엔
지금으로치자면 보습 학원이
딱 하나, 있었다.
성진 주산 학원.
그곳에 억지로 다녔던 6년의 기억이 악몽같다.
(지금 난 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를 가르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악몽의 시간 덕분에 (?)
절대 그런 선생님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루도 빠짐없이 한다.)
어린 시절,
그 학원에서는 수업시작하기 전에
각자 읽을 책을 가지고 와서 읽는 독서 시간이 있었다.
정말 너무너무너무 가난 했던 우리집에는
엄마 아빠가 헌책방에서 한 권씩 사다 준 몇 권 안되는 책이 전부였고
(훗날 친척 오빠가 물려준 낡아빠진 전집을 그 때 받았더라면 ㅠㅠ)
그 책들은 언제나 책에 목말라있던 내가
이미 한 권당 백 번은 읽은 책들이었다.
도저히 가져갈 책이 없던 나는,
아빠가 그림을 그리고 놀으라며 회사에서 가져다 주신 이면지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 가기로 결심했다.
당시 국민학교(그 때는 국민학교였다.) 1학년이던 나에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서 몇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려가며 책을 만드는 일은
장인정신 (?)이 아니면 못했을 거라는 자부심이 아직까지 가득한데...
뿌듯하게 들고 간 그 종이책을
단박에 바닥에 집어던지며 학원 선생님이 말했다.
"이런 걸레쪼가리를 어딜 가지고 와? 장난해?"
아이들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고
나의 자랑스러웠던 첫 책은
순식간에 걸레쪼가리로 전락했다.
소심하고 잘 울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날도 선생님의 싸늘한 눈빛과
아이들의 비웃음을 받으며
또 울보 소리를 들으며 집에 와야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나만의 책을 만들지 않았다.
내가 자라서 성인이 되고난 후,
북아트라는 분야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
묵은 분노가 치올라오곤 했다.
그 사람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져선 안되는 사람이었던 거구나... 생각을 한다.
마귀할멈같은 기억의 그 선생님을
아직도 떠올린다.
나는 절대로, 그런 선생님이 되지 말아야지.
꼭, 아이들의 말을 들어줘야지.
말하기 부끄럽고 싫으면 그 자체로 존중해줘야지.
눈빛으로도 비난을 보내지 말아야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모르는 걸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야지.
그리고 다행히 경력이 십년이 훌쩍 넘어간 아직까지도
나의 직업에 대한 애정과 나의 열정이 살아있음이
나의 자부심이 되었다면
그 때의 선생님의 폭언덕분이라고 해야할까.
결국 세상에 꼭 나쁘기만 한 일은 없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나는-
숫자 3이 오려진 동그란 종이 조각과
호비 캐릭터가 그려진 조각
그리고 아파트 광고 전단지를 따라 오린 메뉴 사진들을
차마 버릴 수가 없다.
분명 엄마에게 소꿉상차림을 해주고 싶어
오려낸 것들이 분명한 그 종이 조각을,
아이의 보물을,
막 버릴 수가 없어서
그 조각들 중 고운 것 몇 개를 추려서
아이가 아끼는 소꿉 그릇에 담아서 한 쪽에 놓아둘 수 밖에 없다.
이따 아이가 차려주는 종이 밥상을 놓고
얌얌얌~ 해줘야하니까.
손을 오므려 입 주변에서 얌얌얌 집게손을 놀리는 모습이
눈에 선해서 웃음이 자꾸 난다.
그건 겉보기엔 쓰레기 조각에 불과하지만
거기엔 돈으로 살 수 없는 아이의 상상력과
엄마에게 밥을 차려주고 싶은 아이의 사랑이 한가득 들어있다는 걸,
직접 경험했기에
상처 받아봤기에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집엔
사람들이 너저분하다고 하는 것들이
온 바닥을 덮고 있고
그 너저분한 것들이
오늘 저녁엔 나와 아이의 행복한 진수성찬을 이루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