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시작하는 발레
나는 음악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으로 19년차.
윗 층 태권도 학원의 쿵쿵대는 소음.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질문, 아우성, 웃음소리.
창문을 열면 학원 차들이 즐비하게 서있다가 내뱉는 부르릉 소리.
학부모들과의 면담, 전화 응대 등등
좋은 것이든, 듣기 싫은 것이든 온 종일을 '소리'에 노출되어 살아온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음악도 듣지 않고, TV나 라디오를 켜지않고 살아왔다.
필요한 순간에 떠오르는 음악을 찾아서 듣고
꼭 보고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서 볼 때가 아니면 어떤 매체도 차단하며 살아왔다.
나에게는 정적이 필요했다. 그나마 내가 견딜 수 있는 건 클래식 음악이었다.
단조롭지만 깨끗한 피아노 소리,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바이올린 소리, 묵직한 첼로 소리
그리고 때로는 잘 어우러진 협주.
내가 음악에 대한 어떤 지식을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그것에는 가사가 없었다.
가사가 없는데 감정이 읽히고 마음을 달래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진짜 음악이었다.
스트레칭 삼아, 라는 명목으로 발레는 선택한 데에는 클래식 음악의 이유도 한 몫했다.
다른 운동을 많이 해보지 않아 특별히 비교할 만한 레벨은 못되지만,
발레야 말로 그 무엇보다도 정직한 운동이다.
동작 하나를 익히는 것에 어떤 꼼수도 없다.
그냥 정말 안되면 될 때까지, 오늘 안되면 내일은 되겠지,
백 번 해서 안되면 이 백 번 하다보면 되겠지.
이런 최우직함으로 하나씩 하나씩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방법이 없는 것이 발레다.
그래서일까.
언어를 공부하고 언어를 가르치는 나의 직업관과도 너무 닮아 있는 운동.
나는 그 정직함에 다시 한 번 매료 되고 있다.
부드러운 음악을 들으며
아주 느리게 구부렸다 폈다, 손끝에 집중하는 나의 시선 하나까지
온전히 내 몸에 집중하는 그 시간은
어느 것과도 견줄 수가 없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그 시간에 완전히 몰입했다가 마무리가 되고나면
나의 바스러진 감정들도 정리가 되고
건강하게 흘린 땀들이 개운해진다.
그렇게 하루 하루 늦된 취발러의 동작을 쌓아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