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때 성적도 고만고만, 아이도 어느 정도 좋아하고, 취업도 잘 된다 해서 별로 고민하지 않고 지방전문대의 유아교육과에 갔다. 대학에 입학하고 여느 대학생들처럼 얼마 큼은 대학 시절을 즐겼던 거 같다. 처음으로 남자 친구를 사귀고, 사랑에 아파도 보고, 이별도 해봤다. 이제와 보면 부끄럽고 세상 유치한 일들이지만 그때는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뜨거웠던 청춘이었음에도 나는 고등학교 졸업식, 대학 졸업식, 모두가 축제 같은 그때 나는 외로웠다. 왜였을까?
고등학교, 대학 시절, 나는 거기에 있었지만 내 기억에 나는 거기에 없다.
누구에게나 가장 빛났을 그 시절이 나에겐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럭저럭 한 시절들이었다. 그 순간순간들마다 나는 나로 살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에 가장 눈부셨을 10대 시절. 나는 적당한 아이였다. 공부도 중간쯤. 친구도 적당히 조금 있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였다.
나는 평범했으나, 눈에 띄고 밝고, 잘 놀고, 소위 말하는 까진 아이들이 부러웠었다.
그 아이들은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튀었고, 친구가 많았다. 그리고 내 눈에는 빛나 보였다.
나는 그런 아이들 앞에서 주눅 들었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말을 걸어 본 적도, 그 친구들이 말을 걸어준 적도 없었다.
나에겐 부럽고 두려운 존재였다. 뒤에 앉아 교실을 장악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 앞에서 내가 왜 그렇게 시시해 보였을까?
그래. 나는 돋보이지 않고, 빛나지 않는 시시한 아이였다. 차마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할 수 있다. 나는 시시했다고.
내 10대 시절은 빛나지 않았고, 나는 시시한 아이였다고.
사춘기 시절을 나를 찾아가는 질풍노도의 시기라 하지 않는가.
그런 나를 스스로 시시하다고 생각했으니 어땠을까?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고, 나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나다운 게 뭔지 찾고 싶었는데 20대가 되어서도 결국 찾지 못하고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나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시시했던 나는 성인이 되어 또다시 시시하고 반짝이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시시했던 순간들은 다 지워졌다. 지금의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래서 추억이 적다. 돌아가고 싶은 기억이 거의 없다.
이제는 시시하지 않게 살고 싶다. 반짝이는 나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지금이 전부인 거처럼 날라리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