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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살의나비 Jul 24. 2023

꿀 먹은 벙어리

내가 ADHD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요즘 나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남편이나 딸, 상담실에서 말곤 당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아는 대화의 주제가 나와도 어떻게 끼어들지 몰라 머뭇거린다. 내가 원래 이렇게 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나. 생각해 보면 요즘만의 일도 아닌 거 같다. 어느 특정 시기를 제외하고는 나는 대체로 말이 없는 편이었다. 특히 나를 아낀다고 생각되지 않는 사람들 틈에선.

상담선생님께서 그러셨다.


나는 나에게 안전한 사람이 아니면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내게 확실한 호감이 있는 사람 앞에서만 나는 가장 나답다. 그랬다. 나는 고등학교 때쯤부터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친구를 원했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도 언젠가부터 멀어져 졸업식 땐 외로운 기분이 들었을 정도로 친구가 없었다. 내 기억에는 그렇다. 대학 때도 휴학하고 코스모스 졸업을 했던 터라 졸업식 땐 당시 남자친구와 엄마, 오빠랑만 함께 했던 거 같다.

그때 같이 복학했던 언니들 중에 지선이라는 언니가 있었는데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잘하는 똑똑한 언니였다. 같이 유치원 실습을 갔는데 나는 거기서도 어설퍼서 적응하지 못하고 쮸뼜거렸다. 여러 가지 과제들은 힘들어 미루었고, 실습 때는 실수 투성이고 엉성했다. 복학을 했음에도 간신히 졸업 점수를 넘겼다. 그 언니는 그런 나의 모습을 다 봤으며 나는 언니가 불편했다. 그 언니 앞에서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욱 확실한 이유를 주는 재주가 있다.

그렇게 대학시절은 흘러갔고, 졸업을 하고 유치원에 취업을 했다.

내가 잘 해냈을까? 물론 아니다. 30명이 넘는 반 아이들은 내게 버거웠으며 매일 하는 교사 회의, 스터디, 교재연구, 수업계획안, 각종 사무처리 등등……나한테는 버거운 일 투성이었다. 복사를 하다 복사지가 걸려 A4지 수십 장을 버리기도 하고, 유치원 차량 때 아이를 잘못 내려줘 발칵 뒤집히기도 하며, 각종 유치원 활동비들은 계산이 맞지 않아 내 돈으로 충당하기 일쑤였고, 교실환경 꾸미기도 내게 너무 힘들었다. 모든 것이 다 힘들었다. 그렇게 버겁게 유치원 생활을 하며 선배 선생님들이 편했을 리 없다. 모두 나를 질책하는 듯했고 나는 그들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당시 같이 6세 반 담임이었던 선생님은 나를 어떻게 보셨을까. 그렇게 내가 도망치듯 반 아이들을 버리고 유치원을 나왔을 때 유치원은 어떻게 됐을까? 그 선생님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만약 다시 마주친다면 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 그렇게 유치원을 나올 때 그 모두를 모른 척하고 내팽겨 치듯 나왔다.


어쩌면 그때부터 내가 어딘가 고장 나있음을 알아차렸어야 했던 거 같다.


 정식으로 취업한 첫 직장을 그렇게 내팽개치고 나오기 전에 누군가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뭐가 힘드냐고 물었어야 했던 거 같다.

그때 난 어디로 갔을까? 기억이 드문드문하다. 친구 집에서 한동안 지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내 첫 직장생활을 스스로 망치고 그 후로 나는 또 두 번의 이직을 하는데…… 그때도 나는 책임감 없이 뛰쳐나오듯 도망쳤다. 그 뒤 책임을 버려둔 채로 말이다.

그때 한 선생님이 한 말이 생각난다. 너 이번이 처음 아니지?

무서웠다. 나를 다 들키는 것이. 집에서도 모르는 나의 행태를 다 들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정신이 나갔던 걸까?

나사가 풀렸던 걸까? 단순히 책임감이 없어서 그랬을까? 세 번씩이나?

지금 와 고백하건대 나는 그때 정말 버틸 힘이 없었다.

그때 부모님들은 왜 나를 그냥 두셨을까? 혼내지도 달래주지도 않으셨다. 그냥 난 그 모두로부터 집으로부터 도망갔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곳도 없었고 너 왜 그러냐고 혼내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나는 피했고, 덮었고, 도망갔다.


나는 직장생활이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때부터 내가 어딘가 아픈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던 거 같다. 그때 나는 그냥 내가 모자라고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나 스스로 알아차려 병원을 갔거나 나를 아끼는 누군가가 조언해 주었다면 나는 조금 덜 힘들었을까? 덜 자책했을까? 모두 나의 선택이지만 가끔은 궁금해진다.


이제는 그 짐을 좀 덜어내도 될 것 같다. 덜어내어야 새로운 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세상 모두가 다 같지 않으니까. 

내가 잘하는 것이 어디 하나는 있겠지. 지금은 그것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나이 마흔.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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