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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살의나비 Jul 30. 2023

그리고. .

또다른 딸이 되어 있었다 (2)

출산예정일이 5월 8일이었다. 5월5일 이슬이 비치고 가 진통이 살살 오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연락했다. 진통이 시작된 거 같다고.그날 엄마와 함께 마지막 만찬을 했다. 돼지갈비 집에서.실컷 먹고 집에 돌아가니 진통이 더 자주 느껴졌다.이런 거구나. 진통이라는 게.한편 걱정되었다. 내가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자연분만 하고 싶은데.그래서 다음날 진료를 보러 갔다. 3.7킬로. 다행히 더 크진 않았다. 자연분만이 가능하다고 하셨다.그렇게 돌아갔는데 그날부터 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행히 휴가를 낸 남편과 엄마가 같이 있어 줬다. 수시로 배가 아파졌다. 식탁을 잡고 진통을 했다. 하하 후후 임산부 요가에서 배운 호흡을 했다. 호흡을 하면 잠시 괜찮았다. 그래도 너무 아팠다. 느껴 본 적없는 아픔이었다. 뭘 먹을 수도 없고 두렵기만 했다.


내가 낳을 수 있을까?

너무너무 아팠다. 남편은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엄마는 시큰둥했다.

“더 떼굴떼굴 굴러야 된다. 나는 간다.”

그러고 엄마는 가셨다. 아직 멀었다며.엄마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저런 엄마가 또 있을까? 엄마는 가시고 남편과 나는 밤을 새가며 진통을 했다. 다음 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갔다.

“1센치 열렸어요. 아직 멀었어요.”

엄마 말이 맞았다. 이렇게 아픈데 1센치 라니…… 돌아가야 했다. 또 진통이 시작되었다. 그 날 밤도 폭풍 같은 진통이 계속되었다.

3일째 거의 잠을 못 잤다. 밤 11시경 병원에 가 내진하니 아직도 1센치.

이제 입원해서 지켜보자고 하셨다. 진통이 원래 이렇게 심한 건가.

태동 검사를 하니 자궁수축이 90 이상 계속되고 있었다.새벽1시 2센치. 3시에 4센치, 12시 6센치……조금씩 열리고 있었다.다 와 간다.

그런데 담당 선생님께서 내진하시더니 더 이상 진행이 안 되고 있다고. 엄마는 너무 힘든데 아기도 안 내려오고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고…… 이 무슨…… 얼마나 아픈 걸 견뎠는데……

“1시간만 더 지켜보고 수술합시다.”

이 무슨……

“아니면 촉진제를 맞고 기다려 볼까요?”

“네에네!!! 촉진제 맞고 기다릴게요. 제가 낳을 거에요!!”

이때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 같다. 촉진제 빨 이 오면서 항문에 수박이 낀 듯한 미칠듯한 통증. 으아아아아. 할 수 있어. 내가 낳을 거야. 내가.임산부체조 때 배운 힘주기 자세 시도. 남편이 울면서 잡아 주고. 내가 힘을 잘 못 줘서 안 나오나?힘들어. 아니야. 할 수 있어. 미친 사람처럼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한 시간 남짓.

의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내진하시더니  

“아이구, 이제 머리카락 보이네. 엄마 잘했네. 이제 분만 대 올라가서 낳으면 되겠네.”

다시 생각해도 그때가 낳은 순간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제가 낳을 수 있어요? 다했어요?”

그렇게 2시30분경 분만대에 올라가 끙 4번 정도 더하니 아기가 내 위에 턱.남편 오열하며 들어오고 같이 기도하고.3일 밤낮 함께 진통해 준 남편. 엄마 믿고 쑤욱 나와준 꼬물이. 그리고 나의 용기와 체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아기를 낳고 2주 동안 조리원, 그리고 도우미 이모 2주.


그렇게 축제 같은 시간과 예행연습은 끝나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그렇게 바라던 엄마 아빠가 되었으나 이제 나는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남편이 혼자 벌어 빚도 갚고 우리 세 식구도 살아야 했다.
이제 우리 둘이 하던 소꿉놀이는 끝났다.

신혼집 전세도 만기가 되어 이사해야하고 또 대출을 내서 집을 구하고 그 부담은 오롯이 남편에게 갔다. 여전히 경제개념이 없는 나는 그저 새집으로 이사 가는 게 좋았고,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 것이 좋았고, 현실적인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모두 남편에게 미뤄뒀다. 그렇게 7년.그러는 사이 우리는 2번의 이사를 하고 집을 샀다. 또 대출은 늘어갔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현실적인 경제적 고민을 나누지 못했다. ADHD라는 나의 질병 때문인 건지 힘든 고민을 피하고 싶은 나의 철없는 이기심 때문인 건지. 이 모두 때문이었겠지만.

나는 동반자가 아니라 키우고 보살펴야 하는 또 다른 딸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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