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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살의나비 Aug 07. 2023

싸구려 와인을 마신다

나는 와인으로 다이어트를 한다

결혼 9년 차, 연애포함 남편과 만난 지 10년 차.

10년 동안 우리는 거의 매일 같이 밤마다 야식과 술을 함께 했다.

연애 때부터 둘 다 술을 좋아해 밤마다 각종 다양한 안주에 소주며 맥주며 주종을 안 가리고 마셨던 거 같다.

술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만나고 결혼하고 살았을까 싶었을 정도다.

아니, 술 안 마시는 다른 연인들은 뭘 하며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나 궁금할 정도로 술 없이는 못 사는 우리 부부다. 알코올 중독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알코올 중독자는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겠다.

알코올 중독자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연상하는 알코올 중독자는 고주망태로 취한 모습으로 일상을 망치는 수준으로 술을 마시는 건데, 우리 부부는 그렇지는 않다. 술은 우리 관계를 좀 더 돈독하게 해주는 윤활유 같은 것이며, 일상을 좀 더 버티게 해주는 영양제 같은 것이다. 이렇게 적고 있으니 더 알코올 중독자 같긴 하지만. 뭐 그건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사설은 여기까지 하고.



그렇게 우리는 둘이서도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려서도 마시고.

부어라 마셔라 세상에 있는 온갖 맛있는 음식들은 우리에게 모두 안주거리였으며 어제는 즐거워서 마시고, 오늘은 힘들어서 마시고, 내일은 또 쉬는 날이니 마시고. 온갖 핑계들을 다 붙여 가며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남편과 둘이 술 마시는 순간은 즐겁고 뜨겁고, 진지하기도 했으며
 사랑스럽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남편과 만난 10년 동안 술을 마신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남편과 나는 제일 좋은 술친구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날마다 술을 마셔댔으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당연히 살이 엄청나게 쪘다. 남편은 10킬로 이상, 나는 결혼식 당시보다 거의 20킬로가 찐 거 같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나는 먹어도 먹어도 살 안 찌면 좋을 텐데 왜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은 다 술 안주인거지?

말도 안 되는 불평불만을 하며 그 불평불만을 안주 삼아 또 마시고 마셨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봤는데 볼살이 축 늘어진 얼굴이 확 불어난 웬 얼굴 큰 40대 아줌마가 거기 있는 거다. 뭐 살찌기 전에도 그다지 작은 얼굴은 아니었지만 거울 속에 그 여자는 얼굴이 커도 너무 컸다. 그리고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한 볼살들이 축 처져 턱에 뼈라는 게 있는 건가 만져 확인해 봐야 했다.

와. 이만큼 찌고 서야 실감하다니.

이건 해도 너무 하다 싶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이제는 바뀌어야겠다. 그날 거울을 보고 결심했다.

나도 다이어트라는 걸 해보자.


누군가 그랬다.

"와 10년 동안 밤마다 그렇게 먹고 이 정도밖에 안 찐 거면 다행인 건데?"

"날씬했던 적이 있었던 거면 그렇게 살찌는 체질은 아니었던 건데..."




희망이 보였다. 워낙 밤에 많이 먹어서 이렇게 찐 거니, 조금만 덜 먹고 야식만 줄이면 되겠다 싶었다.

나는 살면서 다이어트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참을성도 없고, 식욕도 많고, 세상엔 맛있는 게 너무 많다.

나는 힘들거나 짜증 나거나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을 땐 꼭 떡볶이나 곱창전골, 양념 치킨 이런 걸 먹어줘야 속이 풀린다.

결혼 2달 전 결혼식 때 웨딩드레스를 예쁘게 입고 싶어서, 신혼여행 때 생애 처음으로 비키니를 입고 싶어서 4킬로 정도 뺐던 게 나의 평생 동안 한 다이어트의 전부다.

그때는 누구라도 다이어트를 하지 않나?


이제 더는 안 되겠다. 다이어트를 해보자. 하고 맘먹은 게 지난 6월 말이다.

하지만 당장 걱정 되는 게 남편과의 그 좋은 술자리였다. 남편은 야근하고 늦게 집에 돌아오면 나와 술 한잔에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 게 인생의 행복인 사람인데, 나 다이어트하자고 그 시간을 뺏을 수는 없었다. 물론 나도 그 시간을 포기할 수 없었고.

몇 번은 남편 퇴근 후 저녁을 차려주고 그 앞에 나는 술잔만 놓고 아무것도 안 먹고 술만 홀짝 거려봤다.

아에 안 마실 수는 없었다. 남편과 건배도 해줘야 하고.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니 못할 노릇이었다.

저녁을 빙자한 야식은 나를 유혹했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시작한 한 입은 한입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남편의 야식도 지켜야 했고, 우리의 시간도 포기할 수 없었으며, 나는 살을 빼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오랜만에 와인을 마시게 됐는데, 어라? 안주가 많이 안 먹히는 거다?

아, 이거다!

"여보, 여보가 소주 마실 때 나는 그 앞에서 와인에 치즈만 먹으면 되겠다!"

좀 웃기긴 한데, 나한테 맞는 방법일 거 같았다.

아예 안 먹는 거 보다야 덜 빠지겠지만, 지금껏 먹은 거 보다야 훨씬 적게 먹는 거니까.

남편과 마시는 술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의 어이없는 다이어트 방법이랄까.


편의점에 가면 1+1 와인이 1만 원대로 저렴하게 많이 팔고 있다.

그렇게 매일 와인을 마시니, 고급와인은 거들떠도 보지 못한다.

그런데 정말 와인을 마시니 다른 안주가 거의 필요가 없었다. 치즈 몇 조각, 견과류 몇 개 정도면 충분했다.


다른 안주를 안 먹으니 마실 때마다 홀짝홀짝 와인을 1병씩 비우게 되긴 하지만.

남편이 말한다.

"이렇게 매일 와인을 1병씩 마시면 와인만 먹어도 살쪄."

"에이, 말도 안 된다. 안주 먹는 거 보다야 덜 찌겠지? 안 그래?"


그렇게 2달째가 되어 가는 거 같은데, 몸무게는 두둥. 4킬로가 빠졌다.

철저하게 식단 관리를 한 것도 아니고, 살찌는 음식 좀 덜 먹고, 밤에 야식을 줄인 게 다인데,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나?


나는 꽤나 만족스럽다.

이렇게 한 달에 2킬로씩 빼서 올해 말까지 원하는 몸무게를 만들고, 결혼 10주년인 내년 9월에 그때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입고 리마인드 웨딩 촬영을 하는 것이 내 목표다.


와인 다이어트.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다이어트라고 쓸려고 하다가 혹시나 싶어 검색해 보니, 진짜로 와인 다이어트라는 게 있기는 있다! 거봐, 효과 있다니깐. 그런데 하루에 1~2잔 이란다.

아, 나는 하루에 1~2잔은 안 될 거 같은데,

어쨌든 나는 지금 와인다이어트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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