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맞는 사람들과 한 달에 한 번 조촐한 책모임을 하고 있다. 2015년 8월 4명의 사람으로 시작했던 모임이 2019년 8월 현재 18명으로 꽤 많은 인원이 모였다(물론 모든 사람이 매번 참가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책모임이 다른 책모임들에 비해 썩 잘 운영되고 있지는 않은 듯 하지만,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유지된 모임이니 나름의 강점이 있지 않을까? 책 모임을 하고 싶으나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분들에게 '저 같은 사람들도 이렇게 하찮은 방식으로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을 보여드리면 책 모임을 하는데 조금은 용기가 생기고 참고가 될까 싶어 글을 적어본다.
책 모임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보니, 규칙은 임의적으로 정해졌다. 그 규칙은 정말 간단하다. 그 달의 책 선정자가 정한 책을 모임원들이 모두 읽고, 가능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날에 모여 책을 읽은 소감을 나누는 것이다. 이왕이면 책을 읽고 오면 좋으나 다들 자기 생활이 있으니 책을 일부만 읽거나 전혀 읽지 않아도 부담 없이 참여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감상문을 써야 한다는 등의 숙제도 없다.
이런 방식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1.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혼자 목적 없이 한다면 꽤 달성하기 어려운 기준일 수 있지만, 마감 기한을 두고 다른 사람들과 약속을 한다면 그럭저럭 읽을만한 양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거나 필수적으로 감상문을 쓰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 그나마 학업이나 직장생활로 바쁜 사람들도 이따금 짬을 내서 참여할 수 있는 것 같다.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를 순 있겠지만, 책 읽기가 스펙을 쌓거나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는 짐이 아니라, 그 자체가 즐거움이자 목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부담 없는 규칙들로 책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2. 평소 같으면 절대 읽지 않을 책을 읽을 수 있다.
폭넓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나 같은 독서 뉴비들은 아무래도 시야가 좁다 보니 특정 분야, 특정 작가들에 한정하여 책을 편식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한정된 범위의 책들만 읽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고 편협한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각기 다른 취향을 가진 집단원들이 추천해주는 책들을 억지로라도 읽거나 읽진 못하더라도 여러 의견을 들음으로써 생각의 폭을 넓히고 다른 사람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 모임이 아니었다면 초끈 이론을 다룬 브라이언 그린의 '엘리건트 유니버스',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과 같은 책들은 죽을 때까지 접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3. 다양한 의견을 접함으로써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2번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는 하나, 이 항목이 책 모임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책을 읽다 보면 그 책을 내 삶이나 지식의 맥락에서 내용을 이해하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여러 사람이 한 가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같은 글을 읽고도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음으로써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의견 교환은 화학작용과 같은 것이라 새로운 의견을 듣기 전과 후의 내 사고 체계는 조금이라도 유연한 방향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치 없는 의견교환은 없는 듯하다.
특히 개인적으로 이 항목과 관련하여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책 모임을 적극 추천한다. 한 집단원이 미국의 소설가인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라는 단편집을 추천하여 읽게 됐는데, 작가의 명성에 비해 책이 너무 재미없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아 성이 난 상태로 책 모임에 나가게 됐다. 이런 책을 선정한 집단원을 비난하고 싶을 지경이었으니, 독자 분들도 내가 얼마나 그 책을 마음에 안 들어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임에 나가 책선정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각각의 단편을 읽고 느낀 점을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나는 내가 여태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퍼즐 조각이 모인 듯한 명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책 모임을 하며 느꼈던 장점들에 대해 적어봤다. 사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책모임은 정말 체계가 없고 자유분방한 모임으로, 책을 선정한 사람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기도 하는 어메이징 한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의 모임도 좋지만, 좀 더 많은 것을 얻고 싶고 자신을 혹사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체계가 잡혀 있고 과제가 주어지는 규격화된 책 모임에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쪼록 독서라는 것은 참 좋은 것이기 때문에, 모임으로든 개인으로든 취미를 붙여보시기를 권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