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고, 의학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다.
이러한 목적의 위계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궁극에 있는 것은 바로 '행복'으로, 이를 자족적이고 완전한 상태로 본다.
수용 전념 치료(ACT)에서는 목적은 가치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의 가치가 행복이라면 행복해지기 위한 여러 지침들이 필요할 것인데, 이러한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쁘고 경쟁적인 현대 사회에서는 주객이 전도되어 가치를 잊고 목적에 몰두한 채 살아간다.
그 결과, 우리는 종국에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허망함을 느낀다. 내가 뭘 하려고 했던 거지?
무슨 말을 하나 싶으시겠지만, 최근 감명 깊게 봤던 디즈니 영화 '소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서두를 깔아봤다.
정말 좋은 영화이니 혹시나 아직 못 보신 분들은 꼭 보시기를 바란다.
다음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볼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시길 바란다.
영화에서 재즈 아티스트이자 중학교 음악교사인 '조 가드너'는 영화 후반에 결국 자신이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서보고 싶었던 무대에 가까스로 올라서 성공적인 무대를 펼치지만, 펼치고 난 후 허망감을 느끼며 함께 공연한 유명한 재즈 아티스트인 도로시아 윌리엄스에게 이러한 마음을 전한다.
그러자 도로시아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물었다. "바다에 가려면 어떻게 하나요?". 나이 든 물고기는 말했다. "여기가 바다인데?" 어린 물고기는 생각했다. "여기는 그냥 물일 뿐이잖아?" 아마도 이 이야기의 의미는 각자 다르게 느낄 것이다.
나는 바다를 목적, 물을 삶으로 이해했다. 우리는 어떠한 목적을 삶과 동일한 의미로 생각한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공기, 물, 흙은 그대로인 것은 물론, 내가 사랑하는 책, 식당, 사람들도 그대로이다.
모든 것은 실존할 뿐 성공이 행복을 이끌 것이라는 것은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공이란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먼저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건강, 인간관계도 잃고 얻은 성공이 의미가 있는가?
무엇을 위해 성공하려 했는가?
이 질문은 사실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우연히 알게 된 임상심리 전문가라는 직업을 나의 성공, 이상향으로 삼고 십여 년간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다.
결국 몇 주 뒤면 모든 과정이 끝나고 자격증을 손에 넣게 되는 시점에서, 나는 행복보다는 허망함을 느낄 뿐이었다.
내가 이런 종이 쪼가리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달려왔나? 같은 시간을 투자할 것이라면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러나 영화를 보고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임상심리 전문가라는 결과물, 목적 달성이 아니라, 내가 임상심리 전문가라는 진로를 선택하도록 이끌었던 나의 가치관, 그리고 과정을 거치며 얻은 여러 가지 사상, 전문지식들이었던 것이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가치는 나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그리고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나의 가치를 실현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목적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소울에서 조 가드너와 함께 지구로 탈출한 아기 영혼은 재즈 하다(Jazzing)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며,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들을 재즈 한다고 표현한다.
이를 보고 심리학의 '수용 전념 치료(ACT)'의 관점에서 기꺼이 경험하기(Willing)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당신은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무언가를 더 좋게 느끼기 위함이 아니라 그 순간의 생동감에 스스로를 개방하려는 것이며, 자신이 가치를 두는 것을 향해 더 효율적으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삶은 총체고 목적은 그의 일부에 불과하다. 내가 걷는 것, 숨 쉬는 것, 대화하는 것, 괴로운 것 모두 삶이고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