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타공인 금사빠다. 누군가에게 금세 빠져 잘 헤어 나오지 못하는 편(연인이 있을 때도 그러는 것은 아님!). 금사빠라고는 하지만 아무에게나 빠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금사빠의 역사를 정리하다 보니, 금세 좋아하게 되는 사람의 유형을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1. 나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사람
나와 성격이나 취미, 가치관이 비슷하다고 느껴질 때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듣는 노래가 비슷하다거나 좋아하는 소설 작가가 비슷한 사람, 혹은 정치관이니 윤리관이 비슷한 사람. 그러나 대체로 이런 느낌은 착각일 때가 많고, 보통 오래 알고 지내다 보면 나와 그리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감정이 식는 경우가 잦은 듯.
2. 지적인 사람
지적이라는 것은 반드시 학벌, 학력에 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세상사에 박식하거나 남들과 다른 시선을 갖고 있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거나,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녀 좋은 아웃풋을 내는 사람들에게 금세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공부를 잘하거나 노래를 잘하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거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3. 선한 사람
내가 그리 선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맑고 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좋다. 분명 귀찮을 수 있는 일이라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온갖 부조리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개선할 수 있다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시작할 마음가짐이 되어있는 사람들 말이다.
분류를 해봤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연애까지 이어지지 않았고, 오래 교제를 했던 사람도 있지만 그 끝에선 서로가 가진 특성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이별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겪었던 이별 이후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었는데,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이 있었다.
"보통 사랑에 빠질 때에는 상대방의 결함도 장점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나중에는 그런 부분들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지며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상대방이 나와 똑같은 사람 이어야 하고 그러기를 바라기보다는, 다른 점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아직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는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위의 내용을 충실히 따를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연애란 것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관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의 힘든 점을 공감해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만큼의 그릇을 갖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 나는 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도 어려워 혼란스럽다. 30대에 뒤늦게 맞은 사춘기랄까...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산만한 상태이므로 혼자만의 시간을 더 가져야겠다고 느꼈다.
언젠가는 누군가와 다시 연애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영원히 그럴 일이 없을지도 모르고). 그때를 위해서라도 상대방을 나의 좁은 틀에 욱여넣지 않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그릇을 준비해야겠다. 가볍다고 비난받는 금사빠의 오명을 벗기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