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경험과 객관적 지식을 망라하다
최근 2019년 언리미티드 에디션 북 페어에서 성황리에 판매된 "여자 프렌들리(후기: 책 "여자 프렌들리"를 읽고)"의 저자 중 한 명인 신지수의 책이 발간되었다.
당시 "여자 프렌들리"에는 여성의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이하 ADHD)에 대한 짤막한 글을 담았는데, 이 부분이 주목받아 출판사와 협력하여 2021년 6월에 286페이지라는 꽤 긴 분량으로 확장된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이하 나오나애)>라는 이름의 단행본이 출간된 것이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임상심리학자이자 ADHD 당사자인 신지수가 ADHD, 그중에서도 여성 ADHD 환자들의 심리학적인 특성, 증상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여타 심리학 서적들과 다른 것은 개인을 뛰어넘어 '성별'이라는 축을 도입하여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른 성차로 인해 여성들에게 생기는 음영지역을 밝히는 것에 많은 지면을 할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ADHD에는 주의력 결핍으로 인해 실수가 잦은 부주의형, 행동을 조절하지 못해 과잉행동을 하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과잉행동/충동형, 혹은 두 유형이 혼재되어있는 복합형이 존재하는데, 대체로 남성들은 과잉행동/충동형의 양상을 나타내고, 여성들은 부주의형을 주로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차는 분명 기질적인 측면도 있을 수 있으나, 문화적인 영향으로 인해 남성들은 과잉행동적인 측면을 좀 더 인정받는 경향이 있고, 여성들은 소위 '조신해야 한다'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돌발적인 행동들을 미리 차단당해 억제해오다 보니, 과잉행동을 가진 여아들은 지나치게 행동을 억제하여 겉으로 문제행동이 잘 드러나지 않고, 부주의형의 아이들은 ADHD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여겨지지 않아 그저 아이가 똘똘하지 못하다거나 산만한 아이로 치부받으며 ADHD로 의심하는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으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 억압된 문제가 불거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아동 및 청소년기에는 여성에 비해 남성의 ADHD 유병률이 압도적으로 높으나, 20대 이상의 연령부터는 여성의 유병률이 대폭 상승하여 남성과 유사해진다는 점에서 상기한 부분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나오나애>는 ADHD라는 증상을 가진 당사자로서, 그리고 이러한 정신병리를 다루는 임상심리학자라는 전문가로서의 두 정체성을 융합하여 쓴 책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기존에 정신병리를 다룬 에세이들은 개인이 실제로 경험한 것들을 기술하고 있어 좀 더 독자들이 흥미롭게 다가가기 쉽고 좀 더 접근성 있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나, 그 이상의 전문적인 지식을 얻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또한, 심리학/정신의학 전문가들의 책은 과학적인 지식, 통계적 데이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유용한 측면이 있으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일반 독자들이 보기엔 다소 지루할 수 있다.
<나오나애>에서는 기존에 존재했던 이러한 아쉬움들을 꽤 해결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솔직한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정신병리로서의 ADHD를 개관하고 그를 뒷받침하는 다수의 근거자료들(이는 책 말미의 참고문헌으로부터 알 수 있다)을 제시하고 있으며,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 속 팁, 마지막으로 저자가 1년 이상 약물을 복용하며 경험했던 것을 기록한 일지를 가감 없이 공유하고 있다.
이렇듯 사적 경험과 객관적 지식을 망라하는 이 책은 ADHD가 있거나 의심되는 소녀 및 여성들에게 깊은 공감과 재미에 더해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하여 일상생활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님이나 선생님도 평소 이해하지 못했던 자녀, 제자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보다 빨리 의학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도해줌으로써 그들의 긴 인생사에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임상심리학자로서 저자와 같은 훌륭한 작업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질투를 느낀다. 다른 전문가들도 이러한 감정을 느낌으로써 좋은 저서들을 많이 생산하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