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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빈 Jan 26. 2020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아워를 읽고

바위를 버린 시지프스

    ‘골든아워’는 아주대학교 이국종 교수님이 16년여간 외상외과에서 일하며 경험했던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총 2권으로, 1권은 2002년부터 2013년까지의 이야기를, 2권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략 외상외과란 주로 사고로 인해 신체적인 상해를 입은 사람들을 수술하는 진료과로, 특히 이국종 교수님이 근무하고 있는 중증외상센터에서는 중증외상환자들을 치료한다.


    아주대학교의 외상외과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중증외상환자란 ‘둔상이나 관통상 같은 외상으로 주요 장기의 손상 또는 광범위한 신체 부위의 손상을 입고, 출혈성 쇼크나 다발성 장기 기능부전 등의 심각한 합병증을 동반한 환자’를 말한다.

    

    이러한 환자들은 다른 진료과들처럼 미리 예약을 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사고를 당해 그 즉시 응급실로 이송되거나 이송이 어려운 경우 외상외과에서 닥터헬기 등의 운송수단을 이용해 환자가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 이송하는 동안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하는 식이다.

 

    상기한 기술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중증외상을 다루는 사람들은 24시간 대기 상태여야 하며,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수술 실력과 판단력, 그리고 많은 비용과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이국종 교수님은 2002년 처음으로 외상외과 전문의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외상외과는 병원에 수익을 벌어들이기는커녕 한 환자를 치료하는데 엄청난 비용만 들이는 천덕꾸러기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상주 인력은커녕 전공의 조차 배치되지 않아 응급실 한편에서 혼자 꾸려나가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정경원, 권준식과 같은 전문의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전문 간호 인력들도 보충이 되며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는 듯했으나, 여전히 밀려 들어오는 중증외상환자들을 치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으로, 한 달 중 며칠 집에 가는 것을 제외하면 병원에서 상주하며 숙식을 해결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을 통해 구출해낸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이후 아주대학교의 외상의학과가 언론의 조명을 받기는 했지만, 아주대병원에서는 이국종 교수님의 명성만을 이용할 뿐 외상외과에 대한 지원을 전혀 하지 않아 결국 2012년 국가중증외상센터 선정에서 탈락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도 벌어지게 된다. 


    이런 답답한 상황들은 여러 군데에서 벌어진다. 애써 살려놓은 환자가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결국 사망하여 보호자만 외래 진료에 찾아오는 일, 기껏 죽어가는 환자들을 살려놓아도 병원에서는 적자가 난다며 쓴소리를 하고, 다른 의사들은 자기들만 사람을 살리는 것처럼 행세한다며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오고, 힘들게 들여놓은 닥터헬기를 운영하는 데는 주변 주민들의 민원으로 인해 항상 제동이 걸려온다. 


    이런 상황들은 2002년부터 2018년이 되도록 나아지지 않고, 치료진들은 한쪽 눈을 실명하거나 어깨를 다치고 자식을 유산하는 등 자신의 몸을 갈아내어 환자를 살려냈다. 


    여러 가지 내용들이 많이 있지만 자세한 사항은 책을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물론, 책은 저자가 느낀 점들을 위주로 적혀있지만, 중증외상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느끼는 고뇌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저자의 고독함과 외로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지속해나갈수록 주변의 의로운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통받는 비합리적인 상황에서 일을 지속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을 100% 이해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일부 느껴볼 수 있었으며, 올바른 일을 하기에는 심하게 경색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사회구조에 대한 답답함 때문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이 사람이 일을 지속해나가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한편, 차라리 빨리 그만두어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공존했다.


    이 책의 1권을 다 읽고 2권을 읽으려고 하는 와중에 장난처럼 이국종 교수님이 아주대학교 중증외상센터를 그만둔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쓸 때부터 일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 책에 적나라한 정치적인 내용들이 담겨있는 것을 봤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기는 했었다. 이미 그만둘 마음으로 자신이 느꼈던 모든 분노를 책에 담았으리라. 

 

    현시점에 이국종 교수님에 대한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혹자는 이국종 교수님이 사기꾼이고 병원 측이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의 행보는 정치권으로 넘어가는 수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언젠가 중증외상환자가 될 수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국종 교수님이 여태까지 해왔던 업적들은 분명히 앞으로 우리나라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며, 여태까지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훨씬 뛰어넘는 일들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무거운 바윗돌을 내려놓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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