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갓 복학한 나는 대학교 과 내 동아리의 부회장을 맡게 되며 13학번 신입생 친구들과 어울릴 일이 많았는데, 상훈이는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꽤 나이차가 많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허물없이 지내던 친구, 가볍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속이 깊었던 친구였다.
같이 생각 없이 술을 먹으며 웃고 떠들기도 했고, 철학 수업을 함께 들으며 시험 전날 자취방에서 밤새 토론을 하기도 했으며, 내가 시작한 보잘것없는 책모임에도 기꺼이 참여해주고 병세가 악화돼 입원하기 며칠 전 까지도 모임에 나오는 열정을 보여줬다.
마지막 책 모임이 있던 어느 날 저녁, 평소 동글동글 귀여웠던 얼굴이 목이 얇아질 정도로 야위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 물었더니 그냥 요즘 채식을 시작해서 그렇다고 말했던 친구. 자신이 채식을 시작하게 돼서 다음 책 모임의 책은 한강 씨의 "채식주의자"로 정해보고 싶다고 했던 친구. 결국 자신이 정한 책으로 진행된 책 모임에 친구는 오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했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머릿속이 멍해졌다. 함께 소식을 들었던 다른 친구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너무나 비현실적인 소식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들었던 것보다는 당장 위중한 상황은 아니어서 함께 모임을 하던 사람들과 시간을 내어 병문안을 갈 수 있었다.
연명 치료를 포기하고 담담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용감했던 그 친구는 아프기 전과 아픈 뒤에 전혀 다를 것 없이 당당하고 패기 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예전처럼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순간순간에도 이미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환자복을 입고 있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리고 책장에 꽂혀 있는 "채식주의자" 친구가 건강해져 자신이 정한 책으로 모임을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잠시 떠올려봤지만, 이내 현실을 자각하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본인도 의연하게 참고 있기에 흘리지는 않았다.
나중에 친구의 어머니께 전해 듣기로, 이 친구가 책 모임을 그렇게도 좋아했다고 한다. 책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 책 모임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며 상훈이를 즐겁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내가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시간이 흘러 집에 갈 시간이 되었고, 나는 오는 내내 지하철에서 적었던 편지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편지를 받았을 때의 반응은 정말 의외였다.
"남자한테 편지 받아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네요."
역시나 엉뚱한 녀석. 나도 모르게 웃음이 파하고 터졌다.
그리고 그것이 생전 그 친구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요즘도 가끔씩 그 친구가 살아있었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아마 예전처럼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나름의 선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잘 살아가지 않았을까.
젊은 청춘을 짧고 굵게 보낸 친구를 생각하며, 그 친구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나처럼 상훈이를 생각하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몇몇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상훈이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물이 최근 나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