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온기를 신고서
사실 강아솔이라는 가수에 대해서 알게 된 건 몇 해 되지 않았다. 팔로우해놓은 정준일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짤막한 노랫말. 강아솔의 곡 ‘안부인사’였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더 귀를 기울일 수 있으니, 더 잘 들을 수 있으니’라는 글과 함께.
‘내일이면 내 그리움만큼 내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을 겁니다, 보고 싶어요. 아주 많이요'
단서는 던져졌고, 정준일의 팬이기 때문에 이 노래를 들어야만 한다는 강박,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가사에 대한 호기심. 이 두 가지의 이유로, 나는 노래를 재생했다.
그 이후로, 내가 이소라 외에 공연을 따라다니고,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는 여자 뮤지션이 되었다.
민트페이퍼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음악에 대한 생각을 접고 제주도에 내려왔을 때, 오히려 음악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음악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음악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작곡 전공이었던 그녀는 보컬에 대한 부탁을 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그녀의 노래를 직접 부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1집 ‘당신이 놓고 왔던 짧은 기억’이 발매되었다.
'어느 날 꿈결처럼 당신을 부르는 노래가 있다.
당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가 당신을 부르는 그 소리에 눈을 떠 돌아보니, 누군가가 차분히 당신의 머리맡에 다소곳이 앉아 읊조리듯이 당신이 지나온 삶을 이야기한다.
눈에 보였던 사랑, 지나쳐간 사람들, 소소하게 잊힌 이야기들,
지켜보는 친구들, 누군가의 이야기 일수도 있고, 노래하는 이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노래들을,
당신의 어깻죽지 위에 가벼운 손을 얹듯이 노래하고 있다'
1집, ‘당신이 놓고 왔던 짧은 기억’의 소개 중.
흔히 말하는 ‘감성을 건드리는 시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의 현실적인 모습과 현실적인 상상. 빼곡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나, 상상과 같은 조각들이 담겨있다. 모두가 흔히들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 말로는 표현하기 쑥스러운 순간과 상황들을 편안히 이야기한다.
너무 애절하지도 않고, 비극적이지도 않은 현실적인 이야기.
최근 쏟아져 나오는 술 한잔에 털어내는 이별과 눈물보다는 다르게 천천히 마음에 안착한다.
그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청춘시대’의 OST로 잘 알고 있는 ‘나의 대답’이 수록되어 있
는 정규 앨범 단위의 ‘정직한 마음’, 그리고 ‘사랑의 시절’이 발매된다.
‘눈 내린다. 커튼을 열며 나를 깨우는 엄마. 얇은 잠옷을 입은 채로 나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 나갔지. 자동차 위 쌓인 눈 한 아름. 손 시려도 자꾸만 어서 들어오라는 엄마의 말에 작은 눈사람 가지고 집으로 들어갔지’
‘돌보지 못하는 저마다의 마음이 있는 걸까. 들여다볼수록 더욱 외로워져만 가는. 모든 게 다
내 탓이라 말하는 것만 같아. 이런 나를 나는 앓고 이런 나를 나는 앓고 살아가야 될까'
가져오고, 전달하고 싶은 노랫말이 너무나 많지만, 꼽고 꼽아 두 개를 가져온다. 이렇다 할 것 없이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순간을 강아솔은 멜로디와 노랫말로 포착한다. 그건 잘 그려낸 그림보다도, 완벽하게 포착한 사진보다도 큰 흔적을 남긴다. 별 거 없지만, 살며시 떠올리고 아파도 할 수 있는 순간을 노래한다.
음악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평론을 할 만큼 전문가도 아니지만, 좋은 음악은 많다. 반대로 별로인 음악도 많다. 모든 것은 개인의 차이겠지만. 유튜브에서 이규호의 라이브 영상을 보던 중, ‘호흡, 발성, 기교 감성 모두 평균이네요. 여느 코인 노래방 가면 들을 수 있는 목소리..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부르는 게 대단하다 생각 말고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부르는 게 다 좋진 않다는 거죠.’라는 뉘앙스에 댓글이 달려 있었다. 이어 ‘발성에 사로잡혀 음악을 잊은 불쌍한 이여’라는 단 한 문장의 답글.
강아솔의 소극장 공연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통기타를 꼭 쥐고 노래한다. 가사를 틀리거나 음정을 놓쳐 머쓱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정말, 정말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아무 일 없을 때, 그러니까 정말 별 일 없고 마음에 파도가 치지 않을 때, 나는 강아솔의 음악을 또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