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날이다. 이도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아침을 맞이한 날. 그리고 한국과 북한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맺은 날. 1953년 정전협정 후 65년 만의 일이란다. 개인적으로 정치와 역사에 미안할 정도로 관심이 없고 문외한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마리는 오늘 2018년 4월 27일이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나아가서는 세계사에 있어서 대단히 뜻깊은 날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서울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기에 앞서 이도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장거리 비행 며칠 전부터 키타 Kita에 보내지 않기로 한 우리 부부는 키타에 들러 친구들,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이도 사물함에 있던 옷가지들을 챙겨 나와 아침 산책을 즐겼다. 지난 며칠 동안 가을 날씨처럼 차갑더니 다시 따스한 햇살이 우리 가족을 반겨주었다.
이도가 다니는 키타 근처는 동서독 분단 시절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동과 서를 가르던 장벽과 그 장벽을 감시하던 군사 초소 그리고 그 주변에 조성된 Gedenkstätte Berliner Mauer 베를린 장벽 기념공원은 언제나 방문객들로 넘쳐난다. 기념공원과 맞닿은 주거용 건물 벽면을 채운 거대한 사진들은 당시의 급박했던 순간을 기록하고 있어 긴장감과 공원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묘하게 어우러지고 무인 안내소에서는 그 순간들을 보다 자세히 설명해 준다. 우리 가족이 산책을 하던 그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경험하고 느끼고 있었다.
한국의 이웃나라 일본과는 달리 독일은 과거 자신들의 만행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용서를 빌며 뉘우치는 의미로 지우고 싶은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여 모두에게 가감 없이 공개하고 있다. 연례행사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 총리의 공식적인 사죄를 비롯하여 베를린에 조성된 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 Jüdisches Museum Berlin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등과 같은 유대인 추모 관련 시설은 역사를 기억하고 되새기게 하여 후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이끄는 역할은 한다. (다른 관점이지만 베를린의 대단한 관광산업자원이기도 하다.) 치욕의 역사를 그저 덮어버리고 지우려 한다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일본의 경우에는 치욕의 역사를 아예 다루지 않거나 미화시켜서 교육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후세들은 제대로 된 역사를 알 수 없음은 물론이고 선대가 저지른 실수를 또다시 범할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실제로 내가 일본에 잠시 거주하던 시절에는 아무리 가까운 일본 친구들이라도 웬만하면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굉장히 껄끄러운 주제이기도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들과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역사나 정치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적어도 당시 미디어를 거의 매일 장식하던 독도문제라던지 한일합방, 세계 2차 대전 등에 대해선 조금 알고 있다. 최소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는. 하지만 난 그들이 원망스럽기보다는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울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 안쓰러웠다. 적어도 내가 겪어본 일본인들은 공손하고 착하며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하나인 히데오.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여행을 하다가 만난 일본인과 결혼하여 후쿠오카에 료칸(일본전통숙박시설)형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고 난 그곳에서 그의 일을 도우며 몇 달간 지내고 있었다.
“히데오, 내일 쉬는 날인데 오늘 저녁에 뭐할 거야?”
“휴일? 내일은 그냥 금요일인데.”
“아, 착각했다. 한국은 국경일이거든.”
“그래? 무슨 날인데?”
“광복절이야. 한국이 해방된 날이지.”
“그렇구나. 근데 어느 나라로부터 해방됐는데?”
“... 일본.”
“... 아, 미안.”
얼마간의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난 애써 자연스레 다른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한일합방이나 한국의 광복절에 대해 정말 모르고 있었다. 정말로.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틈만 나면 해외여행을 다니고 지금도 틈만 나면 여행을 하는 친구가 이 정도이니...
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주시하던 마리는 다급히 나를 불러 뉴스속보를 보여주었다. 남과 북의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를 하는 장면이 BBC를 통해 보였고 곧이어 두 정상은 분단선의 남쪽에서 그리고 북쪽에서 각각 한 번씩 악수를 하며 웃어 보였다. 나는 잠시 동안 이 비현실적인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저 벅차오르는 감정에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죄파이건 우파이건 민주주의건 공산주의건 그런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단순히 정치적인 쇼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리곤 세상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마리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당황스럽고 묘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한국남편을 둔 독일 여자에게도 이 순간이 그토록 감동적이었던 것일까? 동서로 갈렸던 독일의 통일을 직접 경험한 그녀였기에 더 애틋한 마음이었으려나? 하여간 나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옛 베를린 장벽이 멀지 않은 우리 집 거실에서 마리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맞이하고 있었다.
동과 서로 분단되었던 엄마의 나라와 아직까지 남과 북이 갈라져있는 아빠의 나라를 이도는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까? 참 궁금하다. 나중에 크면 꼭 물어봐야지.
이도가 서울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언젠가, 산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백두산이나 금강산을 오르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걱정 반 호기심반으로 묻던 베를린 친구들의 질문에 더 이상 답하지 않아도 되겠지?
“넌 서울 갈 때 무섭지 않아? 북한이 핵을 가지고 위협하는데? 잊을만하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데? 한국은 종전 국가가 아니라 정전 국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