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용품 쇼핑을 하거나 유아식을 준비하는 것과는 다르게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은 내게 아니 우리 부부에게 즐기기 힘든 일이다. 아마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지 않을까? 소변으로 묵직해진 기저귀를 갈거나 그나마 냄새가 얌전한 응가를 하던 모유수유 시절은 비교적 수월했지만 이유식을 시작하고 점점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도의 응가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응가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우리 부부는 가위바위보를 하기에 이르렀다. 24개월이 지나면서 욕실에 마련한 유아용 변기와 한국 어린이들의 대통령, 꼬마 펭귄이 나오는 동영상으로 소변과 배변 훈련을 시도해 보았지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오히려 평소에 보여주지 않는 동영상 (참고로 우리 집에는 아직도 그 흔한 TV 한 대 없다. 살 돈이 없어서는 아니고...)을 보고 싶었던 이도는 시도 때도 없이 *‘Pipi 피피’와 ‘Kaka 카카’를 외치며 우리의 스마트폰을 들고 욕실로 향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실제로 피피나 카카를 한 적은 없었다. ‘Pipi 피피’, ‘Kaka 카카’는 유아가 사용하는 독일어로 각각‘소변’과 ‘대변’을 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변기에 앉아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던 이도가 우리를 향해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도 피피했어.”
“진짜?”
“여기 봐. 이도 피피했어.”
“와, 진짜네. 우리 아들 다 컸네. 잘했다. 잘했어!”
“피피하는 거 간단해.”
“그렇지? 엄마랑 아빠가 얘기했잖아. 쉽다고.”
드디어 유아용 변기에 소량의 소변을 보는 데 성공한 이도. 자신도 신기했는지 변기에 조그맣게 고인 노란 오줌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고 우리 부부 역시 이도의 오줌을 보며 미소 지었다. 아이 오줌을 보고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그 쾌거도 잠시였다. 그 뒤로 기나긴 시간이 흐르도록 이도는 변기와 가까워지지 않았고 결국 우리 부부의 가위바위보는 계속되었다.
이도가 만 3세가 되어가던 2018년 이른 봄의 어느 날 아침, 키타에서 사용할 기저귀를 싸들고 이도를 등원시켰다. 마침 이도의 담당 선생님이 보이길래 푸념 섞인 농담을 건넸다.
“선생님, 이도는 3살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기저귀를 차네요.”
“아이마다 차이가 있어요. 이 번 여름 즈음이면 이도도 기저귀를 떼지 않을까요? 그렇지 이도야? 천천히 해도 되니까 걱정 말아라.”
이도가 싫어하는데도 반복적으로 강요하거나 다그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기저귀를 벗고 변기를 이용하는데 거부감이 없을 때까지, 자연스럽게 소변과 대변을 가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 때는 두 돌 전에 기저귀를 뗐다.’ 혹은 ‘몇 살인데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느냐.‘, ‘친구 아무개는 기저귀 뗀 지가 언젠데.‘등등 한국에서 어르신들이 흔히 하는 말은 동기부여를 하거나 도움이 된다기 보단 그저 스트레스가 되고 그 스트레스는 오히려 기저귀 졸업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걸 빠르게만 그리고 주변과 비교를 해왔던 한국과는 달리 이 곳에서는 그저 느긋하게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다른 예로 우리와 같은 건물에 이도 또래의 남자아이가 사는데 하루는 그 친구가 *롤러 Roller를 가지고 아빠와 함께 외출을 하고 있었다. 이제서야 *라우프라트 Laufrad를 타기 시작한 이도에 비해 아직 어리고 체구도 작은 조안 Joan이 대단해 보여 그 아이의 아빠에게 물었다.
“조안이 벌써 롤러를 탈 줄 알아?”
“응. 타고 싶다고 해서 사줬더니 잘 타더라고.”
“대단하네! 이도는 이제 Puky 푸키타기 시작했는데.”
“이도도 타고 싶으면 타겠지. 모든 건 때가 있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면 어느새 이도도 킥보드를 타고 있을 거야.”
“그렇겠지...?”
카탈루냐인과 결혼한 독일인 Markus 마르쿠스는 그날따라 더욱 느긋한 웃음을 보이며 아들 조안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그의 말에 수긍을 하면서도 이도도 하루빨리 킥보드를 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순히 킥보드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하던 다른 아이들보다 한 발짝 앞서갔으면 하는 것이 보다 솔직한 마음이랄까?
Roller 롤러는 한국에서 흔히 킥보드라 불리는 이동수단이며 Laufrad 라우프라트는 체인과 페달이 없는 유아용(2~3세) 자전거로 두 발로 땅을 차며 앞으로 나아가는 형식이다. Puky 푸키라는 회사에서 생산하는 라우프라트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국민 자전거다.
9년째 베를린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내 몸에는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이 깊숙이 박혀 있음을 또 한 번 느낀 사건이었다. 지금 내 인생 혹은 주변을 돌아보면 조금 빠르고 느리고는 커다란 의미가 없는데,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행복한 삶인 걸 알게 되었는데도 부모의 조바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여간 기저귀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이도는 39개월, 집에서 그리고 키타에서는 기저귀 없이 지내지만 외출을 하거나 잠을 잘 때에는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다. 한 달 전부터 유아용 변기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과장된 칭찬과 함께 선물이 안겨졌지만 이젠 그러한 것들 없이도 혼자 뒤처리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어번 기저귀 없이 잠을 자보고 싶다고 해서 시도해봤지만 매 번 이불을 축축하게 적시더니 다시 기저귀를 입혀달란다. 그래, 아직 준비가 안되었구나! 그래도 대단한 발전이다. 장하다 우리 아들! 엄마 아빠가 가위바위보를 멈추는 그 날이 곧 오겠지! 오늘도 나는 기저귀와 물티슈 쇼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