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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 Sep 03. 2015

#2. 빨간색 다이어리


"뭐 이런애가 다 있지?"

지영은 방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지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지영이 그닥 신경쓰이지 않는 듯했다.
거실 쇼파에 앉아 책을 보던 헨리는 시계를 봤다.

오후 3시

"무슨 책 읽어요?"

어느 순간 헨리 옆으로 다가온 지영이 그가 읽고 있는 책을 살짝 만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우와~"

책을 뺏어 헨리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난 이 책 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알고는 있어요. 내가 고등학교 때 본 영화가 있는데..
러브레터... 알아요? 남자주인공 고삐리로 나온 배우가 내 첫사랑이랑 닮았어요. 영화에 그런 장면이 나와요.
도서관 창문에 기대어 책을 읽는데 그 책이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예요. 그 모습이 똑같았어요.."
"이와이 슌지"
"아...아는구나..."

책을 뒤척이는 지영은 불어로 적혀있는 책을 보고 놀랐다.

"불어 할줄 알아요? 지금 이걸..원서로 읽고 있는거예요?"
"뭐..책을 읽을 정도........."
"우와~"
"그런데 집에 안가나?"
"아...몇시예요? 허~ 벌써 3시네..집에 갈 준비 해야겠어요...욕실이? 혹시 남는 칫솔?"
"아..."

지영의 뻔뻔함에 두 손 두발 다 든 헨리였다.
왔다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지영의 모습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겉눈질로 쳐다보는 헨리는 순간 자신이 왜 계속 지영을 보는지 알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방에 들어간 후 나온 지영의 모습은 깔끔하고 단정했다.

"오늘 실례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인연이 있으면 또 볼 수 있겠지요라 던가?
내가 물건을 놓고 가서 다시 찾으러 온다던가...또 나의 이런 엉뚱하고 발랄한 모습에 반해 나를 찾아온다거나하는 일은..하하하 드라마 소설 영화 만화책에나 나오는 거니깐..기대도 안하구요. 그러실 필요도 없습니다."
".........................................."

태풍이 지나가고 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헨리였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집안 가득 어제 밤 자신의 품안으로 쓰러질때 나던 아기향이 나는것 같았다. 거실을 왔다갔다 하던 지영의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 움직는것 같았다.
잔상으로 기억하기 위해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

"쿵쿵쿵"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침실로 들어간 헨리는 침대에 놓여져 있는 빨간 다이어리를 물끄럼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놓고 간 물건..."

지영이 떠나기전 했던 말이 생각난 헨리이다.

"자신을 찾아오라는 소리인가?"

지영의 의도가 궁금해진 헨리이다.
빨간 다이어리가 놓여져 있는 침대를 바라 만 보고 있는 헨리는 침대에 다가가 다이어리를 펼쳤다
다이어리에는 지영의 남자친구로 생각되는 사람과의 첫 만남부터 헤어지기 까지의일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한장 한장 조심스럽게 넘기는 헨리다.

<창에 기대어 있는 그 모습..꼭 러브레터 같아>
"참...별거다..."

< 저 사람 가지고 싶어....>
"의도적인 접근인가?"

<그도 나를 보고 있었다. 분명하다>
"너혼자의 착각일꺼야.."

<나한테 라벤더 향이 난데..>
"아니야.. 아기향이야.."

지영의 일기에 혼자말을 하고 있는 헨리다.
아니 두사람의 사랑에 끼어든 또 다른 한 사람이 된 기분이였다.

<두근..두근...고백했어......>
"은근히 헤픈 여자군.."

<오빠가 운전하는 옆모습이 난 참 좋아..>
"나도 뭐..."

신경질적으로 다이어리를 덮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시 다이어리를 읽고 있는 헨리 였다.

<나에게 할말이 있는것 같은데..계속 머뭇 거리는게 이상하다? 프로포즈인가?
아~~28살에 꽃다운 나이에 시집가겠군..ㅋㅋㅋ>
"아...28살인거야? 더 어린줄 알았는데..나랑은 10살 차이가 나는군.."

<세상에..........말.................도...............안....................돼>
"받은건가?"

<아니긴..니네 엄마..진짜 짱이다>
"그러네.. "

<나의 드라마 같았던 사랑 이제 끝>
"끝이라........."

"나와 함께 라면... 어떨까?"

다이어리 속 지영이 그 남자와 다녀온 데이트 장소도, 함께 본 영화도,둘이 나눈 시덥지 않은 농담도 이미 헨리의 머리속에서는 자신과 함께 한 듯했다.지영이 궁금했다. 진짜 지영을 만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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