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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 Sep 17. 2015

#16.환영


오늘은 지영이와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얼굴을 봐서 피곤하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는 명훈이다.


물론 또 지영과 다투었고, 화를 내긴 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언제가는 알아주겠지 하면 거실의 불을 켰다.  사람의 인기척이 났음에도 너무나 조용한 집안이다.


명훈은 도무지 바뀐 자신의 집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가끔 자신의 집에 지영이 와 있곤 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지영은 강아지 마냥 쪼로록 나와 명훈을 반겼다.
그리고는 일분 일초가 아까운듯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영이와  "쿵" "쾅" 이란 소리는 항상 함께 했다.


공기가 차갑다.

침실의 문을 열기가 두려운 명훈이였다.
소연이 있을것이다. 그녀를 보는 것이 두렵다. 결혼한지 3개월이 지나도 아직 어색함을 느낀다.
간간히 가족모임과 회사의 크고 작은 행사 때 눈인사만 했던 사이였다.
출장을 다녀 온 사이 자신의 집에 새로운 짐들이 들어와 있었다.
지영이 가끔 들렸을때 쓰던 물건들은 사라지고 벽지와 가구들이 모두 바뀌어 있었다.
순식간의 일이였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누어 자고 있는 여자가 바뀌어 있었다.
지영이 아니 소연으로.........


양주를 꺼내 서재로 향했다.
술잔의 술이 쓰다. 몇 잔을 연거푸 마시던 명훈은 문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언제 왔어요?"
소연이다.
"방금....."
"네.."
더 말없이 그냥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는 소연이 신기할 따름이다.
소연과의 대화는 열 마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지영이는 안그랬어.."
혼잣말로 중얼 거린다. 이미 만취한 상태였지만 술이 더 필요했다.
"나를 버린건...오빠야..."
지영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실 그랬다. 얼마든지 바꿀수도 있었고, 도망을 갈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영에게는 믿어 달라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부와 명예, 앞으로의 미래가 하루아침에 바뀔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그래서 그냥 명훈은 가만히 있었다.
상황에 휩쓸려 가듯이 조용히 파도에 휩쓸렸다.
"가만히 있었던것은 아니였어. 상황이 정리가....되....면....너를 다시찾아..올꺼라고..그냥 조금 기...다려...주길..."
"합리화 하지마! 오빠는 나에게 사실을 말했던 그 날부터 내 손을 놓았던 거야...."
지영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술이 더 필요하다. 명훈은 일어나 다시 거실로 나가 양주를 꺼냈다.
거실 쇼파에 지영이 누어 리모컨으로 TV의 채널을 바뀌면 말했다.
"재미있는게 안해..."
자신의 뒤에서 지영이 안겨왔다.
"오~~~~~~~~빠 심심해..놀자...."
"오빠..오빠...오빠...."
지영이 자꾸 왔다 갔다 하면 거실을 돌아다닌다. 책을 꺼내고, 나시티의 반바지를 입고
쇼파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  웃는다. 운다. 화를 낸다. 또 웃더니 자신을 바라보면 안아달라고 팔을 벌렸다.
"그만..."
쨍그랑...

명훈이 들고 있던 양주병을 거실 바닥으로 던졌다.
거실바닥은 양주로 흔건히 젖어 있었고, 유리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졌다.
제법 크게 난 소리에도 소연의 방에서는 어떠한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 사실도 화가 난 명훈은 침실로 향했다. 자고 있는 소연을 깨웠다.
"이야기 좀 해.."
"오늘은 늦었어요..얼른 자요.."
"싫어. 내 이야기 들어.."
"나도 싫어. 맑은 정신에 내일 이야기해요. 오늘 나도 피곤해요."
차갑게 말하고 소연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당신은  나랑 왜 결혼한거야?"
명훈이 물었다. 답이 없는 소연이다.
"대답을 하라고.."
"시끄러워요. 내일 아침 일찍 본가 들어가야해. 그러니깐 조용히 자요"
"....................................."
명훈이 나가려고 하는 찰라 소연이 말했다.
"사랑 같은거 그냥 잊어요. 어차피 우린 그렇게 사는 운명이야!"
나가려는 발을 멈추고 명훈은 다시 소연을 바라보면 말했다.
"그래도 적어도 이왕 한 결혼...이 집안에서라도 날 좀 편하게 해줘.."
"당신이야 말로..날 좀 생각해 줘요...............매일 그렇게 다른 여자 생각하면서  술 마시지 말고.."
소연의 말에 조금은 당황하는 명훈이였다.
그녀가 그렇게 말할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래"
명훈이 나가자 소연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적어도 난 당신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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