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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움 Sep 01. 2022

일기. 나만의 대나무 숲이 되어주었다.

6년 전의 육아 일기장을 들여다보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오늘까지 큰 아이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것 제외하고는 계속 집에만 있었다.(아! 일요일에 집 앞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러 잠깐 외출한 것도 있다.)

하루 종일 내가 하는 말은 "안돼", " 맘마 먹자." "정리하자.", "잠깐만 기다려줘", "뭐하고 놀까?"가 전부다. 피곤해 아이가 잠들기 전에 내가 잠들어버린 날이 많은 7일이었다. 10 문장 이상 연결해서 말했던 때가 언제였더라...

(2014년 어느 날)


  작년 11월. 할머니 구순잔치로 친정아빠와 함께 KTX 타고 부산에 다녀왔다. 마침 신랑은 출장이 잡혀 함께 가지 못해 두 아이를 아빠와 함께 케어하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우리 딸들이 기차 안에서 순하게 한 놈은 자고 한 놈은 과자 먹고 주변 구경하고 책 보고 하며 부산까지 잘 와주었다. 그런데 저녁 식사 자리에서 친정 아빠가 삼촌들에게 "난 애 보는 게 힘든 건 줄 몰랐어. 오늘 기차 안에서 애 둘 데리고 오는데 정말 힘들더라."라고 말씀하셨다. 본인도 나처럼 딸 둘을 키우셨는데 아이 키우는 맛(?)을 이제야 아셨다니... 그때 '아빠가 나의 노고를 알아주시는구나.'라는 생각보다 '참... 우리 엄마 혼자서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어느 날)


여자는 하루에 약 2만 단어를 사용한다는데 매일 그 일정량을 채우지 못해 나도 모르게 작은 것에도 짜증이 나고 한숨이 나오는 것 같다. 이상하게 엄마가 생각나는 날이다. 내성적인 성격에 예민해 남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우리 친정엄마. 엄마도 연년생 두 딸을 혼자 키우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갑자기 효녀 모드로 변신하다니... 오늘 진짜 이상한 날이다.


남편아... 오늘 조심해... 나도 나를 잘 몰라.

(2016년 2월의 어느 날)


오랜만에 예전에 써놓았던 글들을 보았다.

읽다 보니 이때의 기억들이 짤 영상처럼 기억난다.


둘째를 임신하고 몇 달 있다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성인 아토피. 얼굴 부분에 진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출산 이후에도 피부 트러블은 계속되었다. 얼굴이 망가지니 타인과 만나기를 기피하고 집 안에서 애만 봤다.

머리는 산발인 채 식탁의자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그 위에 수우 패드를 받치고 둘째 모유수유를 하면서 큰 아이 입에 밥을 떠먹여 주던 날들이 이어지면서 나는 점점 날카로워졌다.

신랑이나 나 자신에게 향해야 할 감정의 화살이 큰 아이에게로 향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별거 아닌 일에 화를 내고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아이의 별거 아닌 행동에 마치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대응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문득 큰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어렸을 때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어렸을 때 엄마의 날카로운 잔소리에 움츠려들던 나의 어린 모습이.


아차 싶었다. 욱했다가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며 후회하는 것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잘못된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 일기를 썼다. 있었던 일들을 떠오르는 대로 이것저것 노트에 쓰다가 팔이 아프면 컴퓨터를 켜고 머릿속 글자들을 입력해갔다. 그렇게 하루 이틀 혼자 쓰다가 숭례문 학당의 '100일 글쓰기 온라인 과정'이 시작한 것을 발견하고 덜컥 신청했다. 둘째 태어난 지 한 달이 좀 지난 시점이었다.


독박 육아하면서 글 쓸 시간을 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이 있어서 가능했다. 아이들 재우려 할 때 또는 깨려는 아이를 옆에서 다독이며 폰으로 글자를 눌러가며 내 안에 담겨있던 감정 찌꺼기를 흘려 내 보냈다.


처음에는 누가 읽을까 걱정이 되어 자기 검열이 심했지만 카페에 올려진 내 글의 조회수가 극히 적은 것을 보고 읽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안심이 되어 맘 편하게 쌓인 감정을 글자로 바꿨다. 무엇을 쓸까 한없이 고민만 하다가 또는 한 두줄 써놓고 이어 나가지를 못해 컴퓨터를 끈 날도 많았다. 오히려 속상하고 화가 많이 쌓였던 날 술술 글이 풀렸다. '어차피 나만 읽는데 어때?'라는 생각으로 혼자만의 대나무 숲을 만들어 간 것이다.


100일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8년 차가 되었다. 매일 꾸준하게 쓰지는 못했다. 어쩌다 생각나는 날 쓸 때도 있었다. 일기장에 쓰다가 블로그에 기록을 남겼다가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서 호흡이 긴 글을 써보기도 했다. 글을 쓰는 시간 동안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으로 조금씩 나를 발견해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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