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다. 스마트폰과 패드를 가지고 있지만 사진을 찍거나 그림 그리기 위함이지 그 외의 기능은 잘 활용하지 않는다. 밀리의 서재 연간 회원이지만 전자책은 아직도 어색하다. 종이를 넘기는 맛으로 책을 읽는 고리타분한 사람이라 가방 안에는 항상 책 한 권과 다이어리가 담겨있다. (아 요즘은 웹소설을 읽는다. 세상에 재밌는 웹소설이 그리 많을 줄이야. 그럼 이제 아날로그 인간이 아닌 건가?)
몇 년 전 한 중학교 도서부 토론 수업을 맡았었는데 그때 학생들에게 무인도에 꼭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을 물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생존과 관련된 물, 불을 켤 수 있는 버너 등의 답이 가장 먼저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학생들의 1순위는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전 죽을지도 몰라요."라는 한 학생의 답은 당시 내게 충격이었다. 필요한 기계임은 알지만 목숨을 논할 정도로 없으면 안 되는 물건이 건가?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보니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시간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니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어른으로서 참 안타깝고 미안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한다. 정작 우리는 책과 친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는 문해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독서를 강조한다. 독서가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과 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와도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할까?
독서는 쾌락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출처: 알쓸신잡)
책은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즐거움과 유익함을 줄 수 있기에 친해져야 한다. 정재승 박사의 말처럼 독서는 쾌락이 되어야 한다. 배터리가 없으면 사용하지 못하는 스마트폰과 달리 가방 안에 책만 있다면 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독서와 친해지지 못했다면 스마트폰에만 매달리게 된다.
어차피 우리 아이도 중학생이 되면 다른 학생들처럼 스마트폰에 빠져들 것이다. 큰 아이는 어쩔 수 없이 기계 고장으로 스마트폰으로 변경했지만 사용 시간에 제한이 있고 둘째는 아직 인터넷이 되지 않는 키즈 폰이다. 엄마의 욕심으로 아이가 어렸을 때만큼은 기계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노는 방법을 터득하길 원했다. 그중 독서를 재밌는 놀이처럼 인식해 스마트폰이 있어도 의존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지하철 이동시 책 읽는 1호. 서서 가는 것이 힘들다며 다른 사람들 없는 곳에 쭈그리고 앉아서 이동
다행히 아이들은 책 한 권이면 지루한 대기 시간을 잘 버티는 사람으로 자라나는 중이다. 아이와 이동할 때면 가방에 책과 색연필, 종이를 챙긴다. 운전면허가 없던 시절에는 아이들이 지하철 타고 지겨워할 때 즈음 가방에서 그림책 한 권씩 건네주고 함께 읽으며 이동했고 동물원에 갈 때면 미니 동물 백과사전을 챙겨서 눈앞에 보이는 동물에 대한 정보를 함께 찾아봤다.
각 잡고 책 육아하다가 제 풀에 꺾여 넘어졌던 경험이 있던 터라 힘 빼고 엄마로서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니 외출 시 책 챙기는 일과 식당에서 스마트폰 대신 다른 놀잇감을 주는 것이었다. 가방이 무거운 단점은 있지만 아이들의 찡찡거림을 줄여주니 육체적 고생이 이득이다.
큰 아이가 4학년이 된 지금은 외출할 때면 가방이 여러 개다. 아이들 각자 자신의 가방에 연필, 연습장, 책을 챙겨 집을 나선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내 짐은 몇 년간 더 무거울 예정이다. 아이들이 스마트폰 없이도 놀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