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좀 빼고 육아하라고!!!
큰 아이 출산 한 달 전 '전통육아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포대기, 완모 등에 집착했던 내가 책 육아 역시 각 잡고 준비했다. 일단 각종 정보 서치 및 도서관에서 관련 책들을 대출해서 어떤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내 책 보다 아이 책을 더 많이 알아보고 온라인 중고 카페를 들락거리며 상태 좋은 중고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이는 장난감보다는 책을 가지고 노는데 익숙해졌고 두 돌 전부터는 잠자기 전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기 시작했다.
책과 친해진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책을 가지고 와 읽어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었다. 잠자리 독서 습관도 잘 잡혔지만 잠이 많지 않던 아이는 엄마의 책 읽어주는 소리에 전혀 잠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또렷해지고 더 많은 책을 꺼내와 읽어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책 육아와 관련된 책들이 몇 권 나왔는데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가 어렸을 때 원할 때까지 몇 시간이고 책을 읽어줬다는 경험담이 있어 또 그 말만 믿고 졸린 눈 비비며 아이가 원할 때까지 책을 읽어줬다. 그러다 너무 힘들면 불 끄고 누워서 이야기를 말해주거나 동요를 무한 반복으로 불러줬는데 밤 9시에 시작한 재우기 시도는 11시 넘어서야 아이가 겨우 잠드니 엄마인 내가 먼저 곯아떨어질 때가 많았다.
가뜩이나 저질 체력인데 욕심이 넘쳐났던 나는 책 육아 고수들의 블로그를 보면서 '엄가다'에도 도전했다. '엄가다'란 '엄마 노가다'의 줄임말로 아이를 위해 독후활동에 필요한 워크북을 만드는 과정을 뜻한다. 프린트 한 종이를 자르고 코팅하고 또 자르고 붙이고를 반복하는 노가다를 통해 하나의 독후 활동북을 만들어 자랑하는 글들을 볼 때마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으로 덥석 프로젝트를 신청하고 돈을 입금했다. 자료를 받아 프린트하면서 '그래. 내 몸이 조금 힘들어도 만들어서 햇살이랑 재밌게 독후 활동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다가 온종일 코팅된 종이를 자르고 붙이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손가락 통증까지 감내하며 워크북을 완성해서 아이에게 내밀었는데 아이는 바로 거절했다. 세상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었다. 인터넷 상 후기 속 사진처럼 엄마가 만든 워크북을 가지고 노는 모습만 그렸지 본체만 체 할 줄이야. 딸내미는 책 읽는 것에 즐거움을 느낄 뿐 엄마와 함께하는 독후 활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또 다른 책을 꺼내와 읽어달라고 요구할 뿐이다. 난 누구를 위해 돈과 시간을 지불했던 것일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딸의 잘못은 아니니 화도 내지 못했다. 그저 낙심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뿐. 엄가다 산물은 그날 뒤로 쓰레기통에 처박혔고 각 잡고 덤볐던 엄가다 책 육아는 내 사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