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움 Aug 18. 2022

각 잡고 책 육아 시작하면 일어나는 일

힘 좀 빼고 육아하라고!!!

  큰 아이 출산 한 달 전 '전통육아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포대기, 완모 등에 집착했던 내가 책 육아 역시 각 잡고 준비했다. 일단 각종 정보 서치 및 도서관에서 관련 책들을 대출해서 어떤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내 책 보다 아이 책을 더 많이 알아보고 온라인 중고 카페를 들락거리며 상태 좋은 중고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이는 장난감보다는 책을 가지고 노는데 익숙해졌고 두 돌 전부터는 잠자기 전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기 시작했다. 


책과 친해진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책을 가지고 와 읽어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었다. 잠자리 독서 습관도 잘 잡혔지만 잠이 많지 않던 아이는 엄마의 책 읽어주는 소리에 전혀 잠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또렷해지고 더 많은 책을 꺼내와 읽어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책 육아와 관련된 책들이 몇 권 나왔는데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가 어렸을 때 원할 때까지 몇 시간이고 책을 읽어줬다는 경험담이 있어 또 그 말만 믿고 졸린 눈 비비며 아이가 원할 때까지 책을 읽어줬다. 그러다 너무 힘들면 불 끄고 누워서 이야기를 말해주거나 동요를 무한 반복으로 불러줬는데 밤 9시에 시작한 재우기 시도는 11시 넘어서야 아이가 겨우 잠드니 엄마인 내가 먼저 곯아떨어질 때가 많았다.


가뜩이나 저질 체력인데 욕심이 넘쳐났던 나는 책 육아 고수들의 블로그를 보면서 '엄가다'에도 도전했다. '엄가다'란 '엄마 노가다'의 줄임말로 아이를 위해 독후활동에 필요한 워크북을 만드는 과정을 뜻한다. 프린트 한 종이를 자르고 코팅하고 또 자르고 붙이고를 반복하는 노가다를 통해 하나의 독후 활동북을 만들어 자랑하는 글들을 볼 때마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으로 덥석 프로젝트를 신청하고 돈을 입금했다. 자료를 받아 프린트하면서 '그래. 내 몸이 조금 힘들어도 만들어서 햇살이랑 재밌게 독후 활동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다가 온종일 코팅된 종이를 자르고 붙이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준비물만 산더미. 내 마음속 짐도 산더미처럼 느껴졌던 엄가다


손가락 통증까지 감내하며 워크북을 완성해서 아이에게 내밀었는데 아이는 바로 거절했다. 세상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었다. 인터넷 상 후기 속 사진처럼 엄마가 만든 워크북을 가지고 노는 모습만 그렸지 본체만 체 할 줄이야. 딸내미는 책 읽는 것에 즐거움을 느낄 뿐 엄마와 함께하는 독후 활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또 다른 책을 꺼내와 읽어달라고 요구할 뿐이다. 난 누구를 위해 돈과 시간을 지불했던 것일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딸의 잘못은 아니니 화도 내지 못했다. 그저 낙심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뿐. 엄가다 산물은 그날 뒤로 쓰레기통에 처박혔고 각 잡고 덤볐던 엄가다 책 육아는 내 사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마흔이지만 아직도 흔들리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