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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레탕트 Feb 04. 2022

<하우스 오브 구찌>
감독의 '품격', 배우의 '시크'

<하우스 오브 구찌> 영화 후기

<그랜토리노>,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자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이름과 인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그의 최근작들과 비교를 하자면 실화에 기반을 둔 이야기라는 점에서 <올 더 머니(2017)>와 유사하며, 여성 캐릭터가 이야기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가장 최근에 개봉한 <라스트 듀얼:최후의 결투(2021)>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래 글에는 <하우스 오브 구찌>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우스 오브 구찌> 포스터 (출처:IMDB)


영화는 명품, 패션계의 클래식 브랜드 ‘구찌’를 배경으로 한 스캔들, 구찌 가문의 쇠락을 다루며, 구찌 가문의 며느리 ‘파트리시아’를 중심으로 ‘마우리치오 구찌 청부 살인 사건’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는 이야기적으로도 ‘파트리시아’라는 캐릭터가 중심에 있지만, 기술적으로도 ‘레이디 가가’라는 배우 한 명에게 많은 것을 몰아준 영화였다. 레이디 가가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은 사실상 조연에 가까운데, 그들의 이름들만을 봤을 때는 실로 과감한 선택이었다. 대배우 ‘알 파치노’와 ‘제레미 아이언스’부터 ‘자레드 레토’, ‘애덤 드라이버’ 그리고 ‘셀마 헤이엑’까지 영화를 수 놓은 보석 같은 배우들이 그 자체로 훌륭한 명품이 되어 레이디 가가를 보조하고 빛나게 만들었다.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 이미지 (출처:IMDB)


그러나 모름지기 아무리 좋은 명품을 둘러도 ‘사람’이 명품다워야 하는 법. 레이디 가가는 <스타 이즈 본> 때 만큼이나 훌륭한 연기와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때로는 수수한 모습으로, 때로는 관능적이게 그리고 광기에 찬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이미 가수 시절부터 천의 얼굴을 보여줬던 그녀였기에 카멜레온 같은 표현력을 갖춘 것이 아닐까.


가수로서의 그녀를 오랫동안 좋아해온 한 명의 팬으로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부터의 그녀의 연기 도전을 응원해온 입장에서, 이제는 도전이라는 단어 없이도 훌륭한 배우로서 인정을 받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명품 패션 브랜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패션과 의상을 구경하는 재미도 대단히 쏠쏠하다. 은은한 갈색, 그리고 녹색과 붉은색으로 대변되는 클래식한 구찌 제품들부터, 브랜드 제2의 전성기 그리고 지금의 구찌의 위상을 만들어낸 ‘톰 포드’의 구찌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구찌 브랜드의 묘사와 같이 고전의 ‘품격’과 현대의 ‘첨단’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브랜드의 진화 과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 이미지 (출처:IMDB)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use of Gucci”
(성부와 성자와 구찌가문의 이름으로)


영화계 테크니션의 거장인 과 화려한 명품 브랜드가 만난 영화인만큼 외적인 비주얼이 주목을 받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만,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 이야기적 완성도 또한 놓치지 않았다.     


이제는 작년이 된 그의 최근 개봉작 <라스트 듀얼:최후의 결투>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전면에 세웠다는 점에서 시대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며, 단순히 여성을 수동적으로 묘사하거나 차별의 피해자로 묘사하지 않고 입체적인 모습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파트리치아’의 행동과 결정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던 것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허영과 복수에 눈이 먼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글래디에이터>, <에일리언>, <블레이드러너> 등 리들리 스콧의 영화는 비주얼적인 요소들이 높게 평가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영화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충돌의 테마를 좋아하는 편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신과 인간’, 혹은 ‘창조주와 피조물’ 등으로 변주된곤 한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지긴 하지만 그가 연출한 거의 모든 작품에는 부자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부자 사이의 갈등이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다만, 영화의 연출, 연기 등 시각적인 즐거움에 비해 각본이 주는 인상은 다소 밋밋하고, 평범했다. 특히 영화 중반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파트리치아’에서 남편인 ‘마우리치오’로 넘어가면서 영화의 톤이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질주하듯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파트리치아’에 비해 ‘마우리치오’라는 인물의 내면에 대해서 충분히 묘사되지 않아 영화 후반의 이야기들이 오히려 지루하게 다가왔다. 구찌 가문 내부의 갈등에 조금 더 집중했더라면 좀 더 힘있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 이미지 (출처:IMDB)
"Gucci is like a cake. You have a taste, and then you'll want more."
(구찌는 케이크 같아. 한 번 맛 보고나면 더 원하게 될거야.)


구찌 가문을 배경으로 한 소동과 스캔들을 치우고 나면, 영화는 굉장히 간단하고 쉬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름 혹은 명예, 부를 향한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한 몰락. 인류 역사에 있어 지겹게 다뤄진 주제이지만, 이를 표현하는데 있어 “명품” 가문의 쇠락만큼 적절한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마우리치오 구찌의 청부살인을 영화의 시작과 끝으로 설정한 수미상관 구조 또한 이러한 허영의 허무함을 표현하는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부동산 가치의 상승으로 인한 저축의 가치가 옅어지고 있는 사회적 배경과 ‘코로나 블루’라는 합리적인(?) 핑계가 합쳐서 그 어느 시대보다 명품의 소비가 많아지고 있는 만큼, ‘가치’를 추구하는 것인지 ‘이름’이라는 껍데기를 소비하고 있는 것인지 한 번쯤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감독 리들리 스콧과 출연진 (출처: GETTY IMAGES)


걸작 혹은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기라성 같은 작품들만큼 높은 평가를 받기에는 어려운 작품일 테지만,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다는 것 자체로도 박수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그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는 시대를 이해하고 그것을 작품에 녹여낸다는 것이 더욱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 막장드라마, 패션 그리고 레이디 가가 혹은 리들리 스콧의 팬이라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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