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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레탕트 Feb 04. 2022

<드라이브 마이 카>
진정한 의미의 소통과 공감

<드라이브 마이 카> 영화 후기

<드라이브 마이 카> 영화에 대해 검색해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것이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소설가인 만큼 신간이 출시될 때마다 꾸준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작가지만, 아쉽게도 그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다. 일본 문학을 선호하지 않는 개인적인 취향이 작용한 것도 있지만, 책과 친해질 무렵에는 이미 그가 출간한 작품의 양이 많아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할지도 몰랐기에 대표작인 ‘1Q84’를 애써 읽은 것이 전부였다.


유명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점 보다, <해피아워>, <아사코>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이 더 큰 관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의 영화에서 받은 따듯한 울림이 아직까지 가슴에 남아있어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가지고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사망을 겪은 남편이 비슷한 상처를 가진 운전사와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 받는 이야기'


어쩌면 한번 쯤 접해봤을 만한 익숙한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그려내는 연출과 각본의 깊이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 원작 얼마나 유사한지는 알 수 없으나,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들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영화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래 글에는 <드라이브 마이 카>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 포스터 (출처:IMDB)


남편인 ‘가후키’와 그의 아내 '오토'는 금슬 좋은 부부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직업에 대한 고민도 편하게 공유하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부부간의 감정 표현도 어색하지 않은 듯한데, 놀랍게도 그녀는 남편 모르게 외도를 즐기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가후키’는 아내의 외도 현장을 목격하고도 별 다른 반응 없이 자리를 떠날 뿐, 당황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런 그녀가 말 그대로 돌연 사망하게 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는 영화가 ‘오토’의 죽음을 묘사하는 방식부터 인상적이다. 집에 혼자 남은 아내의 돌연사, 그리고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남편. 다른 영화였다면 남편을 어떤 방식으로든 아내의 죽음과 연관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어떠한 극적인 묘사나 연출 없이 그녀가 바닥에 쓰러져있는 마지막 모습을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 아내의 죽음에는 외로움도 고통도, 이를 목격한 남편의 슬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영화 내내 이어진다. 거의 강박적일 정도로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연출되었으며, 이를 통해 관객은 인물에게 ‘함부로’ 감정 이입할 수 없게 되었다. 건조한 영화의 연출 방식은 영화가 전하고자 이야기와 맞닿아있다.


연극 연출자 주인공 ‘가후키’는 배우들의 대본연습 시간에 감정을 빼고 대사를 책을 읽듯 읽어달라고 주문한다. 대사를 연습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목소리 톤이 달라지거나,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 대본 연습을 중단하고 다시 읽을 것을 요구한다. 그의 연극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역이 어떤 대사를 하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 배우들은 더욱 답답함을 호소한다.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단어나 억양과 같은 피상적인 것이 아닌, 내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지 스스로 이해한 다음 상대방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임을 영화는 가후키의 연극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즉 영화는 진짜 감정의 전달과 공감을 통한 진정한 의미의 이해와 소통이란 무엇인지를 영화 속 체호프의 연극 ‘바냐 아저씨’를 통해 전달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이미지 (출처:IMDB)


<감정 마주하기>


제목에서처럼 영화 속에서 차와 운전은 중요한 요소로 다뤄진다. ‘가후키’의 붉은색 차는 그에게 단순히 운송수단이 아닌,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하나의 장소로 작용한다. 가후키는 목적지 사이를 오고 가는 동안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와 대사 연습하는 방식으로 혼잣말을 하며 운전하는데, 영화 초반에는 아내에 대한 미련 혹은 이별에 대한 슬픔을 극복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영화 중반 이후 운전사인 ‘미사키’를 만나면서, 죽은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음을 암시한다.


가후키는 영화 속에서 시종일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묘사된다. 그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내의 외도, 죽음을 목격했을 때에도, 아내의 내연자를 장례식장에서 그리고 자신의 연극 오디션에서 마주쳤을 때에도 그의 표정에서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지만,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미사키’와의 마지막 대화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가진 상처와 감정을 마주한다.


주인공의 치유가 영화의 주된 주제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지만, 치유의 과정을 묘사하는 방식은 가후키의 연극 연출 방식을 닮아있어 더 길고 어려운 길을 걸어왔기에 큰 여운을 남긴다.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이미지 (출처:IMDB)


가후키의 날카롭고 매마른 감정선과는 다르게 그의 차는 어느 길에서나 눈에 띄는 강렬한 '붉은색'이다. 이는 그가 감정이 없는 냉혈한이 아니며, 그가 가진 '슬픔', '분노' 등 드러내지 않는 모든 감정이 농축된 색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방법>


"그러니까 한시도 쉬지 말고 일해요. 그리고 때가 되면 정직하게 죽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 힐링을 표방하는 거의 모든 영화, 드라마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진 주제일 것이다. 인생은 상처와 고통의 연속이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만인의 숙제이자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난제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좋은 주제이지만, 다루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마구치류스케 감독은 ‘해피아워’에서처럼, 연필로 꾹꾹 눌러쓴 듯한 진심과 배려 가득한 연출로 위로와 따듯한 감정을 훌륭하게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이미지 (출처:트리플픽쳐스)
영화 속 언어장애 배우의 역할을 맡은 한국인 배우 '박유나'씨의 연기 또한 일품이다. 감정을 전달하고 공감함에 있어 언어의 장벽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섬세한 연기로 훌륭하게 전달한다.


죽은 아내와 함께 준비한 ‘연극’, 어머니로부터 배운 ‘운전’, 가후키와 미사키에게 일은 슬픔을 이겨내는 최선의 방식이다. 우울과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나가서 무슨 일이든 하라는 말은 어쩌면 잔인하고 무책임한 위로일 수 있지만, 살아감에 있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둘의 상황을 통해 그려낸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는 ‘그래도 너는 살아야지.’, ‘힘들어도 살아가야 해’ 따위의 피상적인 위로가 아닌,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한 뒤, ‘한시도 쉬지 말고 일해요. 그리고 때가 되면 정직하게 죽어요.’라는 ‘바냐 아저씨’ 속 소냐의 목소리를 빌어 섬세하면서도 따듯한 손길로 위로한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또한 대단히 인상적이다. 영화 내내 시대적 배경이 뚜렷하게 등장하지 않지만, 어딘가 편안해 보이는 '미사키'가 마스크를 벗고 운전을 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스크린을 넘어 현실과 연결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시대의 터널을 지고 있는 우리에게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위로와 응원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이 아닐까.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이미지 (출처:IMDB)


<영화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법 같은 순간>


가끔이지만 좋은 영화를 만났을 때,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남는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할 때가 종종 있다. 몇몇 장면들과 대사들은 물론, 관람석의 위치, 관객들의 침묵, 상영관의 향기와 백색소음까지 모든 것이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몇몇 장면들이 그런 마법같은 순간으로 다가왔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오토가 잠에서 막 깬 상태로 독백을 하듯 읊조리듯 이야기를 하는 장면, 미사키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가후키와 다카츠키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 그리고 눈이 가득 내린 마을의 조경 등 영화를 본 지 일주일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분위기와 감정이 오롯이 살아 아직까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3시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의 영화였지만,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흥미로운 각색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영화가 만든 세상과 사랑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영화 속 ‘바냐 아저씨’의 등장인물들을 연기한 배우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연기함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그들에게 공감하고 눈물 흘릴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연출과 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예술’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언어와 장소, 그리고 시간을 넘어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순간. ‘예술’, ‘영화’만 가능한 마법 같은 일이다. 


+ 문학작품의 느낌을 원하는 관객, 일상에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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