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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Apr 05. 2023

동행(광장시장, 마로니에공원)

Unsplash의 Bundo Kim

어머니가 지인의 부탁으로 종로에 볼일을 보러 가신단다.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한양도성의 진입문인 혜화문을 통해 넘어갔다. 주변 골목에는 와인바와 작업실이 있었다. 예술가는 빨강 페인트와 하얀 바탕의 창문 안에서 작업 열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옛 혜화동 서울시장 관사와 한양 도성의 성곽이 이어져 있는 시공간을 지난다. 얼마나 이 길을 다녔을까. 주변 작은 골목길을 보며, 지난 시간의 추억이 떠오른다. 20대의 젊은 혈기로 뛰어다녔던 혜화동 거리. 그 거리를 지나니 혜화로터리가 나온다. 20대의 젊은 사람이 많다.


마로니에 공원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힙한 친구들이 들썩거린다. 어디론가 바로 튀어 나갈 것만 같은 남학생들이 꽤나 멋을 부렸다.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가 전부라 집단행동을 많이 한다던데, 그때나 지금이 비슷하다.


어느새 길을 걷다 보니 이화동을 끝으로 종로까지 와버렸다. 어머니는 종로 자주가시는 당골 의료기점에 들어가시기 전에 지인에게 전화를 건다. 차선 너머에는 담배 피우는 젊은 남녀가 보인다. 의류시장에서 일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옷을 사러 온 패션피플인지 꽤나 멋지다.


어머니는 지인의 통화를 마치셨다. 당골 의료기기 상점에 들러 필요한 물품을 담으신다.

무표정한 주인아저씨는 검은 봉투에 물품을 담는 모습이 기계와 같았다.

어머니의 봉투를 받아 들었다.

어머니는 꽤나 만족하신 듯이 " 다른 곳에 비해 집이 물건을 싸게 팔아서 좋아"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이곳에 왔으니 광장시장에서 번데기나 좀 사 갖고 가자"

 "네"


광장시장 주변으로 물건을 파는 상인, 외국인 노동자, 잠시 쉬고 있는 치킨집 아주머니의 모습이 정겹다. 광장시장 안에는 평일인데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전을 부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신다.  

옆 집 전집에는 아직 오후 5시밖에 안 되었는데 젊은 연인의 얼굴에서 붉은 태양 빛이 난다.

일본인 관광객 모녀는 광장시장의 모습이 신기한 듯 둘러본다.

어머니는 " 예전 할머니가 팔던 번데기 집이 안 보인다. 하긴 돌아가셨겠지."

다른 가게 주인에게 " 번데기 얼마예요?" "오천 원이요. 드릴까요?"

말없이 돌아서신다. " 다른 시장이 더 싸다."

저녁 시간도 되었고, 사람도 많이 붐비었다. 찹쌀 도넛가게에 사람이 늘어서 있다. 장사 잘 된다.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가는 길이 힘에 부친다.


어머니는 마로니에 공원 옆 도가게에 들르신다. 도넛을 사서 마로니에 공원에 들러 잠시 요기를 하실 모양이시다. 나 짐을 들고 서있었다.

마로니 공원에는 베이지 코트의 젊은 여성은 전화를 하며, 노란 머리의 외국인 여성은 빵을 먹고,  

그 옆에는 분홍색 옷을 입은 어린 여성스마트 폰에 열중하며,

큰 헤드폰을 쓴 힙한 여성 음악을 듣고 있었다.

봄은 여성의 계절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맨 끝 미술관 옆 자리에 앉았다. 두 다리를 편 채, 도넛으로 허기를 달래며 조용히 홀로 앉아 있는 사람들을 봤다. 예전 마로니에 공원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조금 쉬고 나니 한결 편안했다.

여러 대의 카메라와 젊은 엠씨 남녀가 진행을 한다. 유명인은 아니었다.

오후 6시가 가까워 지자 점점 사람들로 붐빈다. 우리는 재빨리 20대의 젊음의 거리를 빠져나갔다.

그래도 젊음은 좋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반팔을 입던지, 코트를 입던지, 무엇을 입던지, 자유로우니깐.

군모를 쓰고 갔던 나는 잠시 젊은 친구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이제 혜화문이 보인다. 한양 도성의 모습은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 찾다.

언덕 너머로 보이는 집 올라가는 길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오늘 여행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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