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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Apr 14. 2023

깔끔하게 정리되는 면도기 사용 후기

Unsplash의 Supply

수염이 난다. 면도하는 것이 귀찮아 놔두면 수염이 자라나 있다. 20대에는 수염 기르는 아저씨나 형들을 보면, 이해가 잘 안 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이해가 된다. 20년 가까이 면도를 하다 보면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외치고 사는 것이 아니면 때론 정리가 필요하다.


사춘기 시절에는 남자의 상징인 턱수염이 나기를 바랐다. 깔끔한 턱선보다는 수염이 나는 것이 왠지 어른스러워 보여, 하루빨리 수염이 자라기를 기도했다. 자라지도 않는 수염을 매일같이 거울을 보며, 비누칠을 해가며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면도를 했다.


 어릴 때는 왜 아저씨의 지저분한 수염이 좋다고 바랐을까. 내 방하나 정리하나 못하면서, 겉모습에 치중한 시절이어서 그랬을까. 아버지는 어김없이 잔소리를 하셨다 "네 방좀 잘 치워라". 사춘기는 잔소리가 듣기 싫다. 그래도 내 방은 안 치울지언정 면도는 해서 그런지 깔끔했다.


어른이라는 이름을 가장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정리 정돈된 모습은 기본이다. 매일 같이 면도를 하면서 정리를 하지만 귀찮다. 특히 과음한 다음 날 아침은 죽을 맛이다. 씻기도 힘든데 시간은 없고, 자라난 수염을 보면 정리를 안 하고 갈 수 없다.


후다닥 면도기를 챙긴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면도를 하며 정신을 차린다. 부디 오늘 하루도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 뜻과는 다르게 느리고 더디며, 더 지저분해진다. 하루 끝, 초췌한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이 나온다. 나이가 먹어가면 갈수록 더 정리가 안 되는 것이 많다.


사춘기 시절, 방은 지저분해도 깔끔했다. 오히려 어른처럼 따라 하기 위해 수염을 길러 보려 애썼지만, 그래도 순수했던 시절이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정리할 것이 많다. 수염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깔끔하게 정리해야만 했다. 가끔 나이가 먹으면 면도하는 것이 귀찮을 때가 있다. 그래도 깔끔해야 한다. 요즘은 1회용  면도기도 싸고 깔끔하게 잘 정리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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