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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May 25. 2023

법정 스님과 김성근 감독의 지혜로운 모습

Unsplash의 Dim Hou

오늘 아침 라디오에 법정 스님의 일화가 나왔다. 법정 스님은 난초를 키우다 집작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소유하는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애정과 집착은 다르다. 난초가 비를 맞을까 염려하는 자신을 보며 소유하려는 자신의 모습에 그 모습까지 떨쳐 버려야 소유욕에서 벗어나 진정한 무소유로 갈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이다.


인간이 더 많이 소유하려는 마음 때문에 경쟁하고 싸우고 고통받는 모습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은 아닌지 싶다. 그 소유하는 마음 때문에 욕심도 생기고, 집착도 생기며, 화도 나고, 싸우고, 자기 자신스스로 병에 걸려 나와 타인의 생명까지도 죽게 만드는 현상을 언급하신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법정스님이 키우는 난초 하나에 평화와 사랑에 대한 말씀을 전하신 일화인지도 모른다.


실제 이런 일이 있다. 작년 모기 때문에 산 야래나무가 그렇다. 식물이라곤 키워본 적이 별로 없는 내가 밖에서 놔두면 알아서 자라겠지 했다. 꽃이 피어야 이 향 때문에 모기가 오지 않는다. 그런데 꽃을 피울 시기가 돼도 꽃이 피지 않자 내 인생에 관심 없던 야래나무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대문 밖에 놔둔 야래 나무 두 그루에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급하게 나가 보니 문 앞에 흙이 너부러져있고 쓰러져 있었다. 비에 젖은 나무를 일으켜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 3개월이 지난 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꽃을 피우지 않는 꽃을 보며 때가 되면 꽃을 피우겠지 했다. 언젠가 벼에서 나는 쌀알처럼 꽃의 열매가 나기 시작했다.

1년 가까이된 야래나무는 그 사이 꽃이 피고 지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지금은 날이 더워 습한 화장실에 잠시 옮겨 놓고, 간간히 물을 뿌려주는 정도다. 어찌 보면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독이 고, 무관심한 듯한 삶은 오히려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며칠 전 최강야구의 김성근 감독의 말이 생각난다. "야 이놈아 야구공을 왜 그렇게 잡니. 오는 공을 그냥 잡으면 되지. 야구를 좀 부드럽게 해라 부드럽게." 힘이 잔뜩 들어간 아마추어 선수가 있다. 함께 하는 선수는 은퇴한 프로선수이다. 이 아마추어 선수는 함께하는 선배 선수나 감독이 꽤나 부담되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최근 경기에서 그 부담감이 때문이었을까. 이 길 수 있는 경기를 아마추어선수의 실책 2번으로 인해 분위가 다운되었고 경기는 결국 지고 말았다.


김성근 감독은 경기 끝난 후 피곤한 모습을 보였다. 기침을 내뱉기도 했고, 얼굴을 비비며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다. 그는 무거운 입을 열였다. "경기에 지는 것도 감독 책임이다. 저 어린선수가 경기에 실책 해서 집에 가면 경기를 잘 못하는 선수로 낙인찍혀 버린다. 그래서 경기 끝난 후에 훈련을 해야 한다." 라며 말을 마치고 경기장에 나갔다. 아마추어 선수는 김성근 감독의 공을 잡으며 자신의 실수를 잊어 먹게 된다. 다른 아마추어 선수를 불러 함께 3시간 가까이 자신이 실수한 코스로 공을 잡으려 몸을 움직이 반복 했다. 숨이 거칠어지고 결국 나자빠질 때까지 연습했다.

경기에 끝난 아마추어 선수는 말했다. "경기에 끝나고 그냥 집으로 갔으면 아마 잠을 못 잤을 겁니다. 제가 감독님이 어려워서 다가가지 못했는데, 감독님께서 불러주셔서 경기 후 연습을 하고 나니 집에 가서 잊고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정 스님은 자신의 난초에 집착하는 자신을 보면서 난초에도 소유하는 관념까지도 소유하지 않으려 하고, 버리는 것이 진정한 무소유 느끼셨던 것 같다. 오히려 소유하려 하지 않을 때 더 자유롭고, 더 얻을 수 있음을 말하시는 것은 아닐까 싶다. 김성근 감독은 아마추어 선수를 끝까지 책임지고 자책하지 않게 실수한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힘을 빼게 만들어 주었다. 힘이 들어가면 결국 경기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이나 김성근 감독이 지혜로운 것은 오랫동안 자신의 것에 행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것을 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깨달았던 바를 누고 실천하는 모습이 타인에게 귀감이 된다. 이것이 두 분의 공통점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는 고마운 사람 덕분에 오늘도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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