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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Aug 07. 2023

지금 여기서 삶을 살다.

오랜만에 지인에 연락했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친구, 형, 누나, 대학동기 그리고 나에 삶과는 다르다. 혼자 있는 40대 직장인 a형은 주말마다 대학선배 집에서 자거나  당구를 친다. 가끔 동네  친구를 만나지만 다들 결혼해서 예전과 다르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본 형 목소리는 여전히 퉁명스럽다. 혼자 오래 살다 보니 외롭고 힘든 모양이다. 몇 개월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본 적이 있다. 술 한잔을 하며 어릴 때부터 봐왔던 형은 모범생이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 가난한 시절을 보냈던 형은 원만치 않던 가정생활을 얘기하며 지난 시절을 아쉬워했다. 묵묵히 버틴 형도 앞머리숱이 빠지긴 했지만, 탈모약도 먹는다며 다시 자란 머리카락을 자랑한다.


지하에서 아버지 집을 더 좋은 곳으로 옮겨드리고 싶다던 a형은 자신의 동생 b에게 어렴풋이 말했다.  아버지가 코로나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친구인 b에게 연락이 왔다. 그때 a형 집에 처음 가봤다. 집은 예전 반지하보다는 성곽 밑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단칸방 집이다. 이전 집보다는 탁 트인 전망과 바람이 느껴졌다. 공용화장실 문짝이 고장 났다면서 a형이 동생 b에게  고치라 시켰는데 나 불렀다. 우리는 20년처럼 투덜거리면서 고쳤다. 오랜만에 들어가 본 a형의 집에서 친구 아버지 흔적이 있다. 가족사진과 십자가, 묵주, 옷가지, 담배, 그간 혼자 사시면서 지내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도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구 b도, a형도 그 친구 아버지도 볼 시간 없었다. 


최근 친구 b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를 돌보고 있다며 말을 하길래 뭔 일인가 싶었다. 와이프는? 하고 물어보니 탈장 이래서 병원에 있다고 했다. 곧 전화가 왔다. 왜 이렇게 통화를 오래 하며 묻길래 너네 형이라 통화했다고 말했다. 허리는 괜찮냐며 물었다. 괜찮긴 한데 아직도 그렇다면서 나도 그렇다 건강하는 말과 함께 언제 볼 거냐며 물었다. 상황 보고 연락한다며  친구 와이프에게도 안부를 전하고 끊었다. 친구는 결혼 생활하느라 더 정신없다. 아이돌 보랴 일하랴 아픈 몸 이끌어가면 살아 내고 있다.


누나 c는 연극을 하는데 이미지 하고는 다르게 성격이 털털하다. 연락하면 야외콘서트장 사진 하나 덜렁 보낸다. 바쁘다는 건지 싱글 라이프를 사는 누나는 정말 오랜만에 봤다. 나이가 먹으면서 아픈 데가 있다고 했다. 무릎의 인대에 다쳤는데도 수상스키와 보드를 탈 것이라는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나이가 먹고도 아직도 자신의 꼴이 우습다면서 식물하나 키우지도 못하는 자신을 한탄했다.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취미생활은 여전히 하는 것 같다.


난 전화를 고 나서 생각했다. 내가 바쁠 때는 시간이 안되고, 여유가 될 때는 다른 사람이 시간이 안된다. 다 각자의 시간이 있다. 싱글이든 결혼을 했든 다 삶을 살고 있고, 지나간 시간은 그뿐이고 지금의 시간을 사랑하고 내가 서있는 공간에 사람과 어울리며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느낀다. 그때의 친구는 친구고, 지나간 추억은 추억일 뿐이다. 모든 상황이 다 다르다. 그 틀에 나를 맞출 필요도 없고 지금 나에게 맞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오전 중에 글을 적다가 밖에 어머니와 나갔다 왔다.  산책로에는 사람이 없다. 활짝 핀 수국과 맑은 하늘 아래 땀이 흐른다. 난데없는 모기가 물었다. 날이 더워 그늘 사람이 모여 있고, 밖이 오히려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안에만 있다 보면 생각이 갇힐 때가 있는데, 자연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구민회관에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더위를 피해 땀을 식히며 다양한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적고 몸을 움직이며 운동하사람과 대화하는 삶에 형태다.


삶은 나도 모르게 살아내느라 정신없이 몸도 가눌 수 없도록 바쁘게 일하고 돈을 벌기도 한다. 힘들면 쉬는 날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여유가 있으면 문화생활을 통해 건강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다 각자의 맞는 삶을 산다. 나도 그렇다. 그때는 그때에 맞는 삶을 살았고, 지금은 지금 내게 필요한 삶을 살면 된다. 지금 여기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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