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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Sep 02. 2023

먹고 싶은 음식 있나요.

언젠가 식욕을 잃은 적이 있다. 삶에 지쳐 머리가 아플 때 이상하리 만큼 입맛이 없어졌다. 해야 할 일은 많고, 머리는 복잡다. 텅 빈 작은 방에 들어와 가방을 던져놓고 침대에 누웠다. 가습기는 내 방을 온통 뿌옇게 만들어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라면을 잘 끓였다. 아버지가 일을 마치시고 돌아오시면, 방에 누워 티브이를 보셨다. 아버지는 마른 체형에 입이 까다로운 편이셨는데, 반찬투정을 하는 아버지를 보며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데도 초등학생 인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는 고단해 보이셨다. 아버지는 오후 5시 반쯤 집에 들오셨는데, 난 제일슈퍼에서 다이제 과자 하나 사 오겠다며 아버지에게 천 원을 받았다. 


아버지는 다이제 몇 개를 드시고 말씀하셨다. 너무 많이 먹으면 못 먹는다면서, 너 많이 먹어라 하시며 피곤하셨는지 주무셨다. 나는 사온 다이제를 먹으며 리모컨을 조용히 잡고 만화 채널로 돌렸다. 아버지는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을 즐겨보셨는데, 오후 5시 반에는 딱히 재밌는 프로그램이 없었다. 다이제를 먹다 보면 만화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한옥인 우리 집 방은 여닫이 문으로 문을 오픈해 놓고, 아버지 옆에서 한숨 자면 시간이 7시가 다되어갔다.


하늘이 어둑해졌다. 나는 배가 고팠다. 아버지는 코를 고시며 주무시고 계셨다. 멍하니 있다가 잠에서 깨신 아버지는 엄마 안 왔냐며 물으셨다. 어머니가 외출 중일 때는 내가 요리사였다. 난 할 줄 아는 요리가 라면 밖에 없어 라면 두 개를 끓였다. 입맛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라면을 몇 가락 안 드시고, 너 많이 먹어라는 말씀만 하셨다. 나는 아버지 몫까지 먹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입이 짧은 아버지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반찬투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잘 먹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 식욕을 잃었다. 삶에 희망을 잃고, 오로지 공부만 부여잡고 재미없게 살았다. 친구도 안 만나고, 좋아하는 운동도 하기 싫었다. 외출도 잘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걸어오는 교정의 언덕을 지나 기숙사에 들어와 내 방에 누워 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방에 누워서 읽어야 할 책과 과제도 의욕을 잃어하기가 싫었다.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몇 해가 지나고 난 느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는 건 살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했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렇지 않은 나의 반복된 일상 속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삶에 희망이 없으면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어쩌면 내게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당연하지 않음을 느끼고 난 후 음식을 잘 먹을 수 있다는 것에는 생명을 유지하고 싶다는 의미가 있음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식사하기 전 감사기도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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