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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Oct 06. 2023

탈모될 뻔했습니다

20살 초반에 동네 친한 친구는 집안에 할아버지가 대머리라며 걱정을 했다. 그 친구는 똑똑한 친구였고 계산을 잘했다. 그 친구는 유전자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대머리가 아니니, 그다음 차례는 나라며 머리관리 신경 썼다.


친구는 공대생이었다. 대학원 시절 자취방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없는 살림에도 샴푸나 영양제, 틈틈이 머리 상담도 받곤 했다. 난 그 친구와는 달리 숱은 별로 없었지만, 별 신경을 쓰고 살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30대 후반부터 머리숱이 빠진다고는 했다. 그 친구도 남자 나이 30대부터 머리카락이 날아간다며 너도 조심하라고 했다.


20대에 내 머리는 생머리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스트레이트 파마를 했었다. 사춘기 시절 인형당 약국에 가서 머리 는 약을 달라고 하면, 연두색 통에 하얀 크림이 담긴 스트레이트 파마약을 주셨다. 난 설레는 마음으로 화장실에 달려가, 좁은 빛으로 파마약을 고루 바른 뒤 20-30분을 기다렸다. 냄새는 고약했지만, 생머리의 내 모습을 상상했다. 두피는 따가웠고, 기다리다 못해 머리를 감았다. 난 전지현 cf만큼이나 찰랑거리는 생머리를 가졌다.


그뿐인가. 머리를 밀고 힙합바지를 입고 가수가 된냥 지냈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이 지나고, 내게  무거운 삶에 고뇌가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존재와 존재자를 운운하고, 세상과 우주 속에 헤매고 있는 나를 생각하니 한 없이 작아지고 또 작아졌다.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외치고 사춘기로 돌아가 나무를 보며, 타자를 언급하던 시간 내 머리락은 한 올 한 올 날아가기 시작했다. 없던 흰머리도 생기고 외모가 무슨 큰 의미가 있냐며 이가 넓어지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지나가던 선배는 내게 "어이 머리카락 몇 프로 남았어? 난 이제 70프로 남았어"말한 뒤 말없이 서로의 머리만 쳐다봤다.


한술 더 떠 흰머리까지 늘자, 지나가던 교수는 내게 "자네 지혜롭게 사는 것 같구먼." 하며 빙그레 웃었다. 응원을 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삶 고민이 많던 시기에는 모두 떨어지게 되어있음을 체했다. 내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의욕도 식욕도 없음을 말이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난 다시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다. 죽다가 살아난 기분이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게만 살면 그렇다. 그래도 내 이마는 넓다. 이마가 넓으면 마음도 넓다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하나 그 말이 맞다면, 난 마음도 넓고 지혜도 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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