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언제 오나 싶었다. 환절기라 몸이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서 밖에 나가보니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공기도 차고 바람도 부니 제법 쌀쌀한 기운이 맴돈다. 계절은 말도 없이 옷 갈아입을 준비를 한다.
사계절 중 가을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봄은 겨울을 지나 새 생명을 싹튼다. 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이 다가오면 모든 생명은 죽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잎이 색을 바꾸기도 전에 낙엽이 떨어져 생명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고 몸통이 베이는 수난까지 당한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겨울의 시작은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추위의 고통을 이겨내야만 살 수 있다. 추울 때는 집이 최고다. 어디 나가지 않고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녹이며 지내는 것이 좋다. 그래도 밖에 나가야만 할 때면 두터운 옷가지를 챙겨 보온되는 신발을 신고 나가면 그래도 겨울은 또 지나간다.
이제는 가을이라는 계절도 없어지는 것만 같다. 가을이 되어 나무색이 바뀌자마자 낙엽이 떨어지니 사색을 즐길 시간도 없다. 어서 겨울을 준비해야만 한다. 모든 것은 떨어지고,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옷을 대비해 놔야만 할 것 같다. 눈이 오면 연인과 손을 잡고 붕어빵을 나눠먹었던 기억은 이미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되었다.
낭만은 집어 치고 이제 생존만이 내게 남아 있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생명을 보존하는 것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을 말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름다운 연인과 사랑에 빠지는 쓸 때 없는 상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삶과 죽음에서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가야만 하는 이 험난한 세상에 말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다. 나무 색이 변하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모든 생명이 겨울을 준비하는 것만 같다. 이 세상에는 생명이 있으면 죽음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래도 이번 겨울에는 죽음 따위는 집어치우고 눈이 내리면 연인과 손을 잡는 낭만에 젓어 살고 싶은 생각도 있다. 크리스마이스 이브 날, 거룩한 날이 아닌 그냥 신이 난 젊은 연인,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반짝이는 미래를 상상하는 따뜻한 겨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