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유학을 떠나기 전, 현지 적응을 위해 급하게 영어 공부를 했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드라마 'Gossip Girl' 시리즈 오디오 파일을 따서 하루 종일 들었고, 스크립트를 다운받아 달달 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식한 방법이었다. 물론 암기가 언어 학습의 기본이지만, 그땐 그냥 무작정 외웠다. 왜 외워야 하는지도 모른채 그냥 외웠다. 일단 표현들을 머릿속에 다 넣어두면 나중에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미국에 도착해서 처음 방문했던 커피숍에서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주문 내용을 머릿속에서 한글 → 영어로 문장을 정리하고, 가지런히 정리된 문장들을 스크립트로 만들어 말할 준비를 했다. 마치 수능 외국어 영역 문제를 풀던 그 방식 그대로 대화를 하려니 대화가 딱딱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질문이나 반응을 하면 머리가 하얘지면서 버벅거렸고 대화가 고장 나는 순간들이 많았다.
결국 언어는 기계적으로 단어와 표현을 암기하는 것을 넘어 상황에 대한 사전 경험과 학습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새로운 단어와 표현을 학습하고 암기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활용할 수 없는 지식은 생명력이 없다.
실제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는 역량을 기르려면 결국 그 실전과 동일한 상황에 최대한 많이 노출되고 연습하며 체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툭 치면 바로 나오는 정도가 되어야 '진짜 제대로 알고 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닐까. 머릿속에서 통번역을 하고 있다면 아직 연습이 덜 된 것이다.
언어 공부는 정말 끝이 없는 여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