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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기장의 결정을 존중하는 기업문화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을 들라면 저는 주저함 없이

‘기장의 결정을 존중하는 회사의 문화’를 꼽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출발 전 소란을 피우는 승객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하라는 기장의 결정은 곧바로 실행됩니다. 회사의 허락을 얻거나 하는 절차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브리핑 중 기장과 갈등을 빚은 객실 사무장을 비행에서 배제하라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기장의 요구도 일단 그대로 실행됩니다.


기장의 령이 서는 기업문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장이 안하무인 갑질을 일삼아도 회사가 묵인할 거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곳에선 CRM 문제로 종종 부기장으로 강등되는 기장을 봅니다. 지속해서 객실 승무원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부기장은 기장승급을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기장이라 하더라도 감정적으로 일 처리를 하는 경우에는 이곳에선 기장 자리가 보장받기 어렵습니다.


회사는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되 책임질 준비가 된 기장을 원합니다.


한 번은 프놈펜에서 양곤을 거쳐 두바이로 돌아오는 구간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미얀마의 Yangon 공항은 항공유 가격이 비싸서 Fuel Tankering이 결정된 공항이며 동시에 활주로 강도에 제한이 있어 최대 착륙 중량이 Structural Maximum Landing Weight(251톤) 보다 20톤 정도 아래로 제한되는 곳입니다.


연료 Tankering 구간으로 최대치로 연료 급유를 마친 이후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지막 순간에 스텝 STBY 10명이 아직 대기 중이라는 지상 직원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사실을 기장에게 알렸는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기로 하고,
이경우 회사의 최대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 휴가 중인 직원들을 태우지 않고 운행한다 해도 기장을 욕할 수는 없겠지만 기장은 이들 모두를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추가된 1톤의 중량을 낮은 순항고도 선택과 랜딩기어를 일찍 내리는 방법으로 소모하여 제한 중량 이하로 착륙시켰습니다.


회사로 봐서는 스탠바이 티켓을 사용하는 직원을 태우기 위해 연료 1톤 , 비용으로는 500달러를 손해 본 것이지만 기장의 입장에서는 원하는 시간에 두바이로 돌아오지 못할 뻔한 동료 직원들을 복귀시켜 준 것이지요.


종종 이런 결정을 기장에게 미루려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사실 이런 난처한 결정을 기장이 해주면 많은 이들이 편해집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선 이러한 기장의 결정에 대해 회사는 일절 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장의 판단으로 믿고 맡겨둡니다.


이런 결정을 자연스럽게 내릴 수 있는 배경에는


‘기장 자신의 상식은 이미 검증된 것이며 회사와 기장의 가치판단에 견해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회사로서도 약간의 이견이 있는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명백한 회사 정책이나 규정의 오 적용이나 위반이 아닌 한 작은 문제에 대해 기장의 결정에 회사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기장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려 하지 않고 그 책임을 통제부서에 미루려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큰 문제입니다.


경험상 운항 중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최소 시간에 최대로 신뢰할 만한 결정은 회사의 운항 통제가 아닌 기장이 내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신 반드시 그 판단을 회사에 맡겨야 하거나 또는 의견을 구해야 하는 사안에 대해서 기장들은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급을 다투는 비상은 아니지만, 향후 결함 수리와 관련해 회사의 신중한 결정이 요구되는 중대한 결함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륙 후 Center Hydraulic System 이 고장 난 777을 출발 공항으로 복귀시키거나 아니면 목적지까지 그대로 진행시키거나 그것도 아니면 제3의 장소로 회항시켜 수리의 편의성과 운항상 파장을 최소화하는 결정은 반드시 운항 통제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사안입니다.


대신 운항 통제가 간과하고 있는 사안이 발견되면 기장은 다시 한번 이에 대해 조언할 수 있겠지요. 실제 항공기 수리와 영업에만 포커스를 맞추어 그대로 목적지로 비행 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이후에 기장으로부터 항공기는 착륙 후에 자체 택시가 불가능하여 활주로상에 정지해야 하며 이때 Tow Truck이 필요한데 목적지 공항엔 Tow Truck이 없는 것으로 안다는 조언을 받고 다시 회항공항을 바꾼 경우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기장은 착륙 후 수리가 요구되는 중대결함 (주로 MEL을 통해 운항에 제한이 걸리고 수리에 시간이 걸리는 결함)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가능한 한 빨리 운항 통제나 MCC(정비 통제부)에 연락을 취해 지상 직원들이 미리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모두가 회사가 계속 기장의 판단을 믿고 존중할 수 있게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기장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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