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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공군 수송기들의 태풍 전개

해운대에 있던 육군 00사단에 오래전 선배가 근무 중이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곳에 가면 해운대와 광안리 해변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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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바람의 언덕과 태풍  

조금 습기를 머금어 무거웠지만 유난히 기분 좋게 달짝한 바다 내음이 온몸을 감쌌다.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태풍보다 먼저 밀려온 구름이 어느덧 해를 가리고 있었다.


그해, 그 언덕에서 맞은 바람은 다른 바람이었다. 태평양 남쪽 괌 인근 어디에선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처음엔 천천히 그리고 아마도 보름쯤 전부터는 회전력이 높아져 사람들이 태풍이라 부르기 시작했을 그 녀석이 어느새 제주도 근처까지 다다랐다고 구름의 전령을 먼저 이 바람에 실어 보낸 것이다.


이 바람은 남태평양 뜨거운 바다에서 처음 맴돌이할 때 품었던 그 바다 내음을 아직 그대로 품고 있다.


바람의 언덕 위에 우두커니 서서 해운대 앞바다를 바라보며
분명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조종복을 입고 서 있던 군인의 얼굴과 가슴을 그 바람이 한참을 휘돌아 지나갔다.


낭만은 여기까지.


태풍이 부산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수송기들은 이사를 준비해야 한다. 때가 왔다.


시시 각각 다가오는 태풍을 대비해 며칠 전부터 매일 아침 브리핑에 참석하는 기상장교의 몰골이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잃어가며 상해 가는 것이 보인다.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밤잠을 설친 지 오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단본부와 비행대대를 오가며 태풍의 예상 이동경로를 브리핑해야 하니 그는 이 여름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다.


대략 하루 전 태풍의 최종 이동경로가 발표되는 순간, 매 시간 단위로 이제 전 비행단이 촉각을 곤두 세우고 태풍 전개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그 발표에 따라 비행단 거의 모든 수송기들이 태풍 전개를 떠나야 한다. 날개가 큰 수송기 모두를 수용할 행거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대로 둘 경우 태풍에 날아가 버리거나 기골이 손상될 수도 있다.


비행대대도 정비대대도 모두가 초초하게 작전과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발 빠른 대대 CQ나 비행대장은 나름 몇십 초 전에 전화를 받기도 한다.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지만.


"전달 전달, 00시 00부 현재 00 기지 항공기 태풍 전개 결정. 각 대대는 기 하달된 태풍 전개 계획의 세부 스케줄을 작전과로 즉시 보고할 것. 이상"


이제 지휘관의 결정이 났다.
수십대의 수송기들이 이제 내륙의 예천이나 원주 비행장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미리 계획된 작전 계획에 따라 예비부품과 각 파트 정비사들을 모두 태우고 출발할 순간을 기다리며 대기에 들어간다.


미리 상황을 대비해 가방을 싸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이제야 바삐 관사에 전화를 해 가방을 받아 오는 사람들도 더러 눈에 띈다. 모두가 바쁘다. 이제 태풍이 지나가는 약 2박 3일간의 태풍 전개 작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김해 기지에 모든 수송기들이 시동을 걸고 줄줄이 주기장을 빠져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륙을 하고 그대로 수십대의 C130과 CN235들이 열을 지어 내륙 산악으로 둘러싸인 공군기지로 이동하는 장관이 연출된다.


대대 작전계에는 수십대의 항공기 이륙을 알리는 페이징이 한참을 거의 비다시피 한 조용한 작전계를 혼자 울린다.


그렇게 날개가 커서 태풍에 취약한 수송기들이 여름날 며칠간 남편들만을 모두 태우고 떠나 버리면, 이제 관사에는 올해 막 결혼한 신혼의 아내들이 처음 겪어보는 혼자만의 밤이 무서워 어쩔 줄 몰라하지만, 아직 이들은 이 일이 곧 평생 동안 익숙해져야 할 일상이 될 것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대대장 아주머니가 곧 음식을 만들고 새댁들을 불러들여 정신교육(?)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해 우리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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