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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막내는 늘 용감하다.

중위는 용감했다.

우리는 자기와 닮은 구석이 있는 타인에 끌리는 경향이 있지요. 저는 제 속에 있는 다분히 '바른말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게 끌립니다. 깡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여러 번 글을 통해 밝힌 바가 있습니다.

군 조종사 출신임에도 조금 다른 냄새를 풍기는 저 스스로에 대해 오늘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언제부터 나는 조금 달랐을까?


이곳 외항사에 와서 내가 서구적으로 변했던 것일까?


아닙니다.


그럼 저의 IDENTITY를 가장 잘 보여주는 1995년 남해 미조항 사건 현장으로 같이 가 보시죠. ㅋㅋ


1990년대 공군에서는 연속된 비행사고로 조종사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시기가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조종사들이 한꺼번에 비행사고로 순직하는 일이 계속되다 보니 공군본부에서는 그 원인을 조사했고 연속된 비행사고의 원인이 경직된 상하관계, 대대 내의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라는 결론을 내고 SR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됩니다. 2박 3일간 비행대대가 잠시 비행을 멈추고 대학의 MT 또는 수련회 같은 것을 모두 같이 가서 그간 서로 풀지 못한 갈등을 풀고 대화를 하라는 취지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 대대에 전입 온 지 몇 달이 안된 막내 중위였습니다.
미조항의 생환훈련장을 SR장소로 빌려 첫날 대대장과 대대원 간의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오늘 말하는 모든 것들은 그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그간 대대 운영과 관련해 불만이 있었거나 건의할 사항이 있으면 말해 주기 바란다!"
대대장님께서 판을 깔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말이 없이 조용합니다.


다시 대대장이
"공군본부에서 사고방지를 위해 국민의 세금을 들여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야! 그 어떤 말도 나중에 신상에 영향을 주지 않을 테니까 나를 믿고 어서들 얘기를 해 줘!"


그렇게 10분 또 10분 아무런 제안도 비판도 없이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때 막내 정 중위가 얼굴이 벌게 져서는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어~ 그래 우리 막내 그래~ 막내가 할 말이 있을 거야, 그래 어서 얘기를 해봐라!"


몇십 분을 대대원들을 달래느라 이제 슬슬 화가 올라오던 대대장님이 막내가 손을 든 것을 보고는 너무 반가워하시더군요.


"지금 모두들 뭐하시는 겁니까? 선배님들. 비행사고를 방지하자고 국민의 세금을 들여 이곳에 3일 동안 비행을 모두 중단하고 대대원들을 모아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아무도 한마디 말이 없는 겁니까? 대대 생활이 모두 만족스러우십니까? 선배님들!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대대장님은 허허 웃고 계시고, 직속 선배들의 그 놀란 눈들이 지금도 기억나네요.


겁이 없었지요. ㅋㅋ


그 날 이후 선배분들은 제가 어떤 성격인지 알아보셨을 겁니다.
이뻐하시던 분들도 있고 철없다고 하시던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95년 미조항 SR 사건입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참, 그리고 1년 후에 저는 대대에서 타 비행대대로 트레이드됩니다.
바로 그 신상에 아무 영향이 없을 거라던 그 대대장님께 찍혀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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