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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6. 2019

웃자란 나무

Dragon's Blood Tree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가 바라다보이는 'Royal Botanic Garden'에는 옆으로 넘어진 이상하게 생긴 나무 한그루가 있다.

나무를 뿌리 채 뽑아서 거꾸로 땅에 삐딱히 박아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이렇다 보니 쓰러진 이 나무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늘 한 마디씩 중얼거린다.

"이상하게 생긴 나무네. 그런데 왜 여기 이렇게 방치돼 있는 거지? 베어버리든지 아니면 다시 바로 세우지 않고 말이야."



어느 날 그날따라 잘 발달한 편서풍을 타고 이곳 상공을 지나가던 바람이 사람들의 이 말을 듣고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 나머지 잠시 땅으로 내려와 쓰러진 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나무야 넌 왜 이렇게 쓰러져 있니? 너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다른 나무들처럼 바로 세워달라고 해봐?"


"걱정해 주어서 고마운데, 거기 쓰여 있는 팻말을 읽어보렴. 나의 둥치 아랫부분에 금이 가 있어서 무리하게 세우면 부러질 수도 있어서 그냥 이대로 두기로 했데."

나무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는 체념한 듯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나무가 주위를 둘러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난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 모두들 나만 빼고는 잘 적응하고 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넘어져 있잖아.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모두들 내가 위아래가 뒤집어져 있다고 수군거리잖아."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람이 갑자기 씩 웃으며

"난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잘 알고 있단다. 오래전 여기에서 아주 먼 아프리카에서 너와 비슷하게 생긴 나무들을 만난 적이 있어.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의 '카나리 아일런드'라는 곳과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예맨이라는 나라의 남쪽 섬에는 너와 같은 나무가 아직 많이 있단다. 혹시 너에게 이름이 있다는 걸 아니?”


"응. 나를 Dragon's Blood Tree라고 부른데. 내 몸에 상처가 나면 피처럼 빨간 수액이 뚝뚝 떨어지거든."

나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신의 온몸에 난 이제는 옹이가 돼버린 상처들을 보여준다.


바람이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여기에는 너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드물지만 사실 사람들은 너의 종족들을 수천 년 동안 신성시 해왔단다. 우선 로마시대 장교들의 빨간 망토를 물들이기 위해 너의 피를 사용한 일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사실 오랫동안 너의 피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서 아주 비싸게 팔렸단다. 이외에도 중세시대에는 연금술사들이 너의 피로 금을 만들려 시도를 하기도 했고 어떤 주술사들은 너의 피로 마술을 부리기도 했지. 지금도 예맨의 남쪽 바다에 있는 섬 소코트라(Socotra)에는 너의 동족들이 많이 살고 있단다.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물이 귀한 이 섬에서 너희 종족 Drangon's Blood 나무들은 1000년을 넘게 산다고 알려져 있지. 너는 사실 그냥 ‘아무 나무’가 아니란다. 사람들이 수천 년간 신성시 해온 '신령한 대상'이란다. 그래서 10년이 넘게 이렇게 쓰러져 있어도 사람들이 너를 보호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란다."


이제는 바람이 전하는 말에 나무는 더욱 솔깃해져서는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있다.


"이곳이 만약 너의 조상들이 살던 섬같이 돌산이었고 물도 부족했더라면 너는 분명 처음부터 좀 더 깊게 뿌리를 내렸을 거야.  그리고 몸집을 키우기에 앞서 아주 멀리까지 뿌리를 펼쳐 튼튼하게 자리를 잡았을 테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너는 이곳에서 깊게 뿌리를 내리는 법을 잊었구나. 사람들이 너에게 너무 관심을 주어서 네가 웃자라 버린 거야. 그것이 네 탓이 아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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