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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Dec 09. 2019

폭우가 지나간 엔테베를 이륙하다

적도에서의 비행

새벽이 되어서야 밤새 무섭게 몰아치던 폭풍이 잠잠해졌다. 폭풍이 지나간 이후에도 비는 이어져서 오후가 되어서도 크루들이 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차창밖으로는 약하게 비가 뿌리고 있었다.

적도에 위치한 엔테베 공항의 기상은 이맘때 변화무쌍하다. 예보에는 잡혀있지 않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 어느 순간 폭우가 다시 쏟아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하늘색이었다. 하늘 한구석에 아직 시커먼 비구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항공기에 도착 후 외부 점검을 서둘러 마친 것도 혹시나 폭우가 다시 공항을 덮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출발 40분을 앞두고 부기장 쪽을 바라보고 앉은 기장의 등 뒤쪽을 부기장 제이슨이 가리킨다.

"시커먼 것이 몰려오는데요. 기장님. 곧 쏟아져 내릴 것 같은데요!"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바로 본 공항의 북쪽 하늘이 어느새 한층 가까이 다가선 비구름으로 잔뜩 어두워져 있었다.

곧이어 '꾸르릉' 하는 뇌우 소리가 근처에서 낮게 들렸다. 순간 승객들이 보딩 브리지를 통해 항공기에 탑승하는 것이 보였다. 아직까지는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보딩 브리지 너머로 보이는 저 검은 비구름만 제외하면.


오늘 그들에게 남은 문제는 이제 단 하나, 저 소나기구름이 언제 얼마나 공항에 영향을 주는가 였다.  

그리고 더 기다릴 것도 없이 조종석 유리 위로 커다란 소나기 물방울이 거칠게 하나 둘 뚝 뚝 떨어지는가 싶더니 오래지 않아 하얀 물보라를 주기장 바닥에 만들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조종석 전면과 측면의 유리를 따라 빗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릴 만큼 빗줄기가 거세졌다. 건너편에 보이던 관제탑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고 하얀 비의 커튼이 조종사들의 시야를 가렸다.


"이 정도 소나기를 미니멈(결심 고도: 이 고도에서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면 내리지 못하고 복행 해야 한다.) 에서 만나게 되면 제 아무리 선임기장이라도 못 내릴 것 같은데?"

영국인 부기장 Jason을 바라보며 기장이 왼쪽 눈을 살짝 윙크하며 말을 건네자 그가 다소 과장되게 눈을 치켜 뜨고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씽긋 웃는다.


"역시 비행도 운이 중요해. 이런 폭우를 결정적인 순간에 만나지 않는 것이 Luck(행운)이야. 참 다행이야. 내 경험상 이 소나기는 약 30분 정도 그러니까 승객들의 탑승이 완료되는 40분 후 즈음이면 이미 공항 상공을 빠져나가고 있을 거야. 그럼 우리는 안전하게 이륙을 할 수 있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륙 성능 계산을 할 때 Windshear(바람의 속도와 방향의 급격한 변화 현상으로 폭우가 내릴 때 흔히 발생한다)를 고려해서 TOGA(최대 파워)로 이륙하도록 하자."

좀 전에 이미 오늘 이륙중량에 맞추어 엔진 출력을 딱 필요한 만큼만 줄여서 이륙하는 Flex Temp로 이륙성능을 구해 두었지만 폭우가 시작된 이상 기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만약을 대비해 TOGA(최대 이륙 파워)로 다시 이륙성능 계산을 하자고 요구하고 있었다.


"최대 파워 이륙에 V1 132 나트, VR 148 나트,  New VR 160 나트, V2 165 나트" 부기장이 성능 계산 컴퓨터에 방금 계산을 마친 이륙 속도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장과 부기장은 각자 서로의 IPAD에 계산된 속도를 비교하고는 곧이어 계산된 속도를 항공기의 FMS(비행 컴퓨터)에 입력하기 시작한다.


Push Back 10분 전


벌써 30분째 쏟아지던 소나기가 기장의 예상대로 조금씩 기세가 누그러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조종실에서 내다보는 주기장의 바닥에는 물이 흥건하게 고여서는 조종사들이 말하는 ‘Standing Water’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외부 카메라로 이 비속에서도 지상직원들이 후방 카고 도어에 컨테이너를 어렵게 밀어 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기장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동남아에서도 이 정도의 폭우라면 화물을 싣는 작업은 잠시 중단할 법도 한데..."

살이 검어 더욱 강인함이 두드러지는 화물 직원들이 연신 얼굴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팔뚝으로 쓰윽 쓰윽 닦아내며 미끄러운 Cargo Loader위에서 무슨 일인지 손으로 컨테이너를 밀어 넣고 있었다. 아마도 Cargo Loader가 갑자기 쏟아진 폭우속에 작동을 멈춘 것이라라.


이제는 결심을 할 시간이 되었다. 분명 빗방울은 약해지는 것이 확연했다.

"비가 확실히 약해진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하늘색도 환해지고 있고 출발하는 데 무리는 없어 보이는데 제이슨! 자네 생각은 어때?"

부기장 제이슨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조금 수그려 창밖을 한번 좌에서 우로 주욱 둘러보는 시늉을 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아 보이는데요. "


곧이어 출발 허가가 나오고 기장이 짧게 환영 방송(PA)을 한 이후에 터그 트럭이 항공기를 가쁜 숨을 몰아 내 쉬며 밀어내기 시작했다. 엔진이 정상적으로 하나, 둘 시동이 걸리고 활주로를 향해 택시가 시작되었다.  부기장이 미끄러운 노면임에도 아직까지는 제법 잘 컨트롤하고 있었지만 기장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속도를 줄여서 조심해 주길 바래!"

미끄러운 노면에서 777의 노즈 기어는 종종 '드드득' 소리를 내며 미끄러진다.


이 말에 지금까지도 잘해 주었지만 제이슨은 더욱 세심하게 이동속도를 10 나트 이내로 맞추어 활주로까지 나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 전혀 잔소리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택시가 이어졌다.


활주로가 다가올 때 즈음 반가운 교신음이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ND(항법 DISPLAY)상에 고도 1800피트를 지나며 지금 활주로로 접근하고 있는 항공기의 심벌이 나타났다.

"이티오피안 25! WIND 170 10 나트(170도 방향에 10 나트) Clear to land(착륙을 허가합니다.)"


지금 접근하고 있는 항공기가 있다는 말은 곧 기상이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는 이륙보다는 착륙하는 항공기가 더 위험하다.


단지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이티오피언 737은 지금 공항의 북쪽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이고 지금 출발을 앞둔 항공기는 남쪽으로 이륙해 좌선회 해 공항의 북동쪽으로 빠져나가는 경로를 비행해야 한다. 그래서 만약 이 루트에 방금 공항에 폭우를 뿌리며 지나간 CB(위험한 적난운 구름)가 아직 남아 있다면 최악의 경우 이륙을 지연하거나 또는 이륙 후 회피를 위한 기동을 관제소와 이륙 전에 조율할 필요가 있었다.


777이 활주로를 향해 나아가는 중에도 기장은 고개를 연신 좌우로 바삐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기상을 판단하기 바빴다. 다행히 동서남북 모든 방향의 하늘이 밝은 색을 띠고 있었다. 적어도 우박이나 폭우를 담고 있는 시커먼 적란운은 더 이상 그 어느 방향에도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활주로에 항공기를 정대하라는 타워 관제사의 지시가 있고 잠시 대기선에 멈추어 섰던 승객 300명을 태운 무게 280톤의 육중한 777이 파킹 브레이크를 풀고 Thrust Lever를 조금씩 앞으로 밀어 넣어 엔진 N1계기가 30%에 다다르자 제법 육중한 엔진 가속음을 내는가 싶더니 곧바로 움찔거리며 활주로 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항공기가 활주로에 들어선 후 90도를 좌로 선회를 하자 미리 켜 두었던 기상 레이더가 점차 이륙 후 상승할 남쪽 하늘에 레이더 전파를 주사하고 곧이어 반사파들이 계기판 위에 빨강 노랑 녹색으로 각기 다른 구름의 두께를 시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예상한 데로 출항 경로가 표시된 녹색 라인 근처에는 모든 구름이 아직 녹색으로 강수의 정도가 약함을 지시하고 있었다.


"모두 좋아 보이는데 자네 생각은 어때?"

기장이 부기장 쪽을 향해 마지막 질문을 하자 그도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동의합니다. 기장님 이륙에 문제가 없겠어요."


곧이어 관제탑으로부터 이륙 허가를 받은 777이 활주로를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평상시처럼 엔진의 수명연장을 위해 출력을 줄이지 않고 나쁜 날씨를 고려해 TOGA 최대 이륙 파워가 FMS(항법 컴퓨터)에 선택이 되어 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보다 큰 지름을 가진 777의 두대의 GE 엔진은 순식간에 최대출력까지 가속이 되고 곧이어 각기 10만 파운드가 넘는 추력을 뒤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잠시 그쳤던 빗방울이 다시 전면 윈드쉴드를 때려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기장이 마치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재빠르게 부기장석쪽의 와이퍼를 작동시켰다가 이내 비가 그치자 다시 OFF위치로 돌렸다. 곧이어

"VR"

이륙을 위한 자세를 만드는 속도를 기장이 CALL OUT 하자, 마침내 777의 피치가 이륙을 위한 10도를 향해 들리기 시작하고 곧이어 메인기어까지 지금껏 소음과 진동을 만들어 내던 활주로를 떠나 헛돌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Positive Climb(확실히 상승 중임!)의 기장의 Call out에 이어 부기장의 "Gear UP!"


이륙은 전반적으로 부드러웠다.

이륙한 항공기의 랜딩기어가 올라가고 이륙을 위해 내려두었던 플랩이 한 칸 한 칸 조종석 레버의 움직임에 따라 천천히 주익 속으로 사라지자, 777은 이제 깨끗한 외장으로 최대 상승 성능을 위해 속도 250 나트 까지 올려 가속을 한다. 이후 해발 고도 14000피트 즉 지상에서 1만 피트를 지나며 오늘 최대 속도인 310 나트의 상승 속도로 올려 목표 고도인 35000피트로 777이 상승을 하기 시작한다. 구름은 다행히 1만 피트를 지나며 대부분 항공기보다 낮은 바닥에 깔리고 더 이상 구름으로 인한 터뷸런스의 우려가 없다는 판단에 기장의 손이 Seat Belt Sign Knob를 돌려 Auto라고 쓰여있는 12시 방향으로 돌려 객실의 좌석벨트 사인을 꺼주었다. 곧이어 기장의 손이 객실 비디오 버튼을 누르자 그간 점프 시트에 Harness까지 어깨 위로 단단히 내려 고정한 채 이 순간을 기다리던 승무원들이 하나둘 일어나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그들의 서비스가 시작될 시간이다.  


이어 기장도 어깨 위로 내려 매고 있던  하네스를 '툭'하며 풀어내고는 그간 남아 있던 긴장을 털어내듯 부기장 제이슨을 향해 농담을 한다.


"항공기 세척작업은 당분간 따로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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