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제이 Dec 06. 2019

등 뒤에서 따라오는 부기장

CRM(CREW RESOURCE MANAGEMENT)

좋은 기장이란 부기장을 언제 얼마나 기다려 주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기장입니다. 그리고 부기장이 상황판단력을 잃지 않도록 세심히 관찰하고 늘 미리미리 서로의 생각을 맞추어 가는 사람입니다. - JAY의 생각



"비행기에 끌려가지 말고 늘 앞서서 나가야 한다."


조종사는 매 순간마다 나의 에너지와 주변 환경 속에서의 위치 그리고 내가 원하는 비행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냉철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다. 이 상황판단이 결여되었을 때를 가리켜 '비행기에 끌려간다'  영어로는 Behind the Aircraft라고 표현한다.


상황판단력을 상실한 조종사가 모는 항공기는 사실 '조종사 없이  혼자 날아가고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비행 생활 중 경험한 관련된 일화가 있다.   

수송기 부기장 시절, 정기공수 임무로 군산공항에서 엔진 시동을 걸고 막 나오려는 순간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장이 기본 절차를 건너뛰며 서두르기 시작했다.  부기장인 내가 프로시저를 미쳐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서둘러 재촉하는 통에 사실 난 조종석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비행기에 끌려가고 있는 상태'였다.  

이륙 허가를 요청하고 곧바로 항공기는 활주로에서 이륙 활주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계획된 이륙 속도인 "브이 알(VR)" 콜 아웃을  하자 이제 기장이 조종간을 점차 당겨 이륙 자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순간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이~~ 씨, 이거 왜 이래.... 음...." 잔뜩 휠을 당겨 올려도 항공기가 좀체 부양이 되지 않은 채 이륙 활주를 계속하고 있었고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은 채 낑낑거리다시피 항공기를 이륙시키려 휠을 당기는 기장의 모습이 어깨너머로 보였다.  다행히 활주로는 전투기가 이륙하기에도 충분할 만큼  길었고 우리는 아주 가벼웠다. 잠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조금 뒤 항공기는 어찌어찌 부양이 이루어지고 곧  1000피트를 넘어서자 우리는 이륙을 위해 내려둔 고양력 장치, 보조 날개 즉 플랩(FLAP)을 올릴 순서에 다다랐다.

"Flaps Up!"


기장의 지시에 따라 플랩을 올리려 나의 왼 손을 가져다 대자, 이럴 수가!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순간 화들짝 놀래서는 플랩 레버가 내려져 있어야 할 자리를 내려다보았을 때 그곳에 Lever는 보이지 않았다.  우린 그날 이륙을 위해 필요한 플랩을 내리지 않고  'NO FLAP'상태로 이륙을 한 것이다.


늘 장난기가 많았던 기장이었던 선배도 너무 놀란 나머지 오른손 손가락을 모아 입에 밀어 넣고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비행은 그런 것이다. 절차를 만들어 두고 핑퐁을 치듯이  상호 확인(CROSS CHECK)하고  단계별 체크리스트가 정확하게 완료되지 않으면 그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절차를 만들어 둔 이유가 모두 이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 인 것이다.



비행훈련을 막 시작한 학생들이나 에어라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참 부기장들은 종종 자신이 항공기에 끌려가고 있는 상태를 경험한다.  

"너무 심하게 자책하지 마시라!"

경력이 부족한 신참들은 늘 그런 것이다. 같은 상황을 마주해도 기장과는 이해하는 깊이가 다르고 똑같은 공항 자료와 기상 정보를 읽어도 상황판단에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기장인 내가 생각하는 부기장이 비행기에 끌려가는 상황은 십중팔구 기장인 나의 잘못이다.  미리 브리핑을 해 주었다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기장이 기장이 보는 것의 100을 모두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비행기의 뒤에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 조종석 안에서 따라올 정도는 상황인식을 공유하고 필요하다면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래야 기장의 실수를 막아줄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대학신문기자에서 외항사의 기장이 되기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