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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Dec 21. 2019

조종사가 되기에 가장 최악의 장소

인도네시아 파푸아의 부시 파일럿

North Gap Wamena, 인도네시아 파푸아 2011년 7월


조금 전 도착한 와메나 상공엔 예상대로 구름이 가득했다. 13,000 피트에 이르는 두 개의 산 봉우리만이  운해를 뚫고 날카롭게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루스리 기장은  오늘 저 두 개의 봉우리 사이를 Broken(하늘의 2/3 정도가 구름에 가린 상태) 상태의 구름을 뚫고 내려간 뒤 계곡 사이에 흐르는 물길을 따라 진행하다 와메나의 활주로에 착륙해야 한다.


파푸아의 대부분 활주로에는 계기접근 절차가  발간되어 있지 않다. 와메나도 예외는 아니다. 절차를 수립할 장애물 회피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조종사의 시각에 의지한 시계접근(VFR) 공항인 이곳에서 지난 10여 년간 접근 중 추락한 비행기는 대충 10대가 넘는다.


'인도네시아 파푸아 이 세상에서 가장 비행하기 위험한 곳'


늘 이곳에 도착하면 먼저 양쪽 산 사면에 그간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가 조종사들의 시야에 먼저 들어온다.  항공기에서 가장 튼튼한 꼬리날개만이 불타버린 동체 옆에 기괴한 모습으로 여전히 꼿꼿하다.


이곳은 파푸아 열대 정글지역이다. 지금도 정글 속 어딘가엔 식인종들이 살고 있다.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는 파푸아 뉴기니를 오가는 인도네시아의 '부시 파일럿'이다.

파푸아 뉴기니의 원시부족들


몇 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비행을 나서기 전에 갑자기 급히 지점에서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현재 공항이 폐쇄되었어요. 출발하지 마십시오.  현재 마을이 산에서 내려온 식인 종족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21세기에 식인종이라니!


사실이다. 파푸아에는 아직도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이 소동은 급기야 특수부대를 실은 C130 항공기가 활주로에 착륙해 며칠이 걸려 이들을 다시 정글로 몰아내고 나서야 끝이 났다.


오전 10시경에 도착한 Wamena 에는 아직 아침 안개인지 구름인지 구분이 곤란한 것들이  골짜기 사이사이를 매우고 있었다.

기장은 우선 그들이 지금 뚫고 들어가야 할 골짜기 위를 선회하며 기상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힘들 것 같은데, 구름이 너무 많아."


그의 말에 조종석 뒤에 바짝 다가서 헤드셋을 끼고 듣고 있던 LOAD MASTER 아흐메드가 갑자기 끼어든다.

"캡틴 어떻게 안될까요? 오늘도 화물을 마을에 전달하지 못하면 정말 곤란합니다. 홀딩을 하더라도 내려주세요"

그의 말에 흘끗 뒤를 돌아본 루스리 기장이 잠시 휠을 부기장에게 넘기고 생각에 잠겼다. 회사도 난처한 상황이다  벌써 며칠째 날씨가 나빠 결항중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고민은 일반 에어라인 조종사들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곳은 '해봐서 안되면 말고'라고 일단 저질러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려면 그들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접근을 시작해서 미니멈에서 활주로가 안 보이면 GO AROUND(복행)하면 그만인 '호사스러운 에어라인 계기비행조종사들' 은 상상도 하지 못할 곳이다. 접근 중 하나의 엔진이 고장이 나도 나머지 엔진을 사용해  '고 어라운드'를 하면 충분히 주변의 장애물을 회피할 수 있는 안전마진이 보장된 그런 곳이 아니다. 골짜기 맨 안쪽에 자리 잡은 활주로를 향해 순전히 조종사의 눈으로 산 사이를 비집고 내려가 착륙시켜야 한다.

문제는 골짜기 양쪽 산 사면의 높이가 해발 13000피트에 이른다는 것에 있다. 활주로 너머에는 감히 상승해 타고 넘을 수 없는 8000피트의 산이 바로 가로막고 있다.


일단 접근을 시작하면 무조건 착륙을 해야 하는 곳! No Way Out! 돌아 나올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같은 곳이다  

와메나로 들어가는 경로의 구름. 이런 구름사이를 지나야 활주로가 나온다.


상식적으로 이 골짜기에서 시각 참조물을 잃고 나면 나갈 곳은 지금 그들이 지나쳐 온 들어온 골짜기뿐이므로 선회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그 선회반경 안에 산이 아주 바싹 다가와 있다. 30도 뱅크를 기준으로 선회를 시작하면 100% 충돌한다. 그런 곳이다. 이곳에 계기접근절차가 있을 수 없는 이유다.


활주로를 시야에서 놓치는 순간 삶과 죽음은 이제부턴 조종사의 운에 맡겨야 한다.



“Whoop whoop Pull Up, Whoop Whoop Pull up!”


미친 듯 거칠게 밀어 넣은 Thrust Lever를 신호로 고 어라운드가 시작되었다. 4개의 엔진이 터질 듯 최대출력을 만들어내면서 본능적으로 루스리는 BAE 146의 피치를 들어 올리면서 거의  동시에 우로 날개를 거칠게 눕협다. 그는 지난 5년간 백번도 넘게 이런 날이 오게 되면 지금 이 기동을 하리라 늘 마음속으로 연습해 왔다


예상대로 선회를 시작한 항공기의 기수가 산 쪽을 향하자 순간 지상 장애물과 충돌을 미리 알리는 GPWS의 경보가 칵핏 전체를 두들기듯 울리기 시작했다.


"웁 웁. 당기세요. 당기세요."  

충돌이 임박해 있었다.

어쩌면 한 뼘만큼의 차이로 지금 좌측 날개 끝이 나뭇가지 끝을 스치며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부시 파일럿의 목숨을 건 도박이 시작되었다.

날개 끝이 언제고 나뭇가지에 걸려 바로 힘없이  핑그르르 돌아서는 산비탈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귓등을 때리는 충돌 경보임이 한참 동안 끝날 줄을 모르고 울리는 동안에도, 자세계상의 피치는 이미 25도 상승에 뱅크(날개의 기울기)는 우로 이미 45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일반 비행에서 30도 뱅크 이상의 기동은 금지된다.)


“알라 후 아크바르~  (알라는 위대하시다). "

그의 입에서 이 말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알라시여 제가 오늘 이 골짜기를 살아 돌아간다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습니다. 제발 제발."

그는 그 순간 애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순간 그의 머릿속에 산 사면에 널브러져 있던 동료들의 부서진 비행기 잔해들이 짧게 명멸했다..


“Whoop Whoop Pull Up, Bank Angle, Bank Angle”


충돌까지는 불과 10여 초.  


이미 뱅크는 50도를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갑자기 거짓말처럼 충돌 경보가 사라졌다. 엔진이 내뿜는 거친 터빈의 소음 외에는 아무것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구름을 뚫고  빠져나온 BAE 146 화물기의 조종실에 순간 아침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알라 후 아크바르~ 알라 후 아크바르~


그가 실성한 듯 이 말을 중얼거리며 이제 막 기적적으로 빠져나온 죽음의  골짜기를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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