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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Jan 01. 2020

기장의 고백

오늘 Go Around는 제 잘못 때문입니다.

크루 중 맨 마지막으로 차에 오르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인도 출신으로 보이던 운전사에게 오른 다섯 손가락 끝을 뾰족이  상태로 내밀었다.   운전사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뜻을 그가 알아들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버스에 타고 있던 크루들 모두의 시선이 일시에 그에게  집중되었다. 평상시 같으면 비행이 끝난 지금 각자의 SNS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을 이 시간에 어느 한 명도 예외 없이 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엄청난 집중력이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들의 표정에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이는 것 같았다. 희미하고 어색한 미소를  얼굴에 올리고는 어색한 정적 속에 14명의 승무원들이 기장의 입을 바라보고 있다.


"여러분, 오늘 Go Around는 제 잘못입니다. 제가 접근 중에 스위치 하나를 잘못 조작했어요. 그래서 계기접근 전파를 타고 내려가지 못하고 2000피트에  Level Off(고도에 정지)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착륙 시간이 지연된 점 사과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


이 말이 끝나자마자 몇 명은 기다렸다는 듯 


"괜찮아요. 기장님. 안전하게 비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른 남자 승무원은 "기장님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

그가 이 말을 꺼내자 옆에 앉아 있던 동료가 옆구리를 쿡 지르는 것이 보인다. 이내 그가

"아닙니다. 기장님 이따가 따로 질문드릴게요. "ㅎㅎ 하며 멋쩍게 웃음을 지고는 손을 내렸다.


기장이 자리에 앉자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사무장에게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자 동그랗게 눈을 뜨며 집중해 듣고 있던 그녀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은 지금 기장의 마음이 편치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조금 전까지 분주히 아이패드를 꺼내 무언가를 찾던 부기장이 다행히 답을 찾아내었는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선다.

곧이어 기장에게 아이패드를 건네주며 해당 항목을 손가락으로 눌러 보여준다.


"보고서는 쓰시지 않아도 되겠어요. 1000피트 이하에서의 복행(Go Around)만 안전보고서 항목이네요. 여길 보세요."


그의 말처럼 ASR(AIR SAFETY REPORT)을 써서 회사에 반드시 보고해야 할 '사건' 목록에 오늘처럼 2000피트에서 GO AROUND 하는 상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안전상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회사가 인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행이다. 한 가지 수고는 덜었네. "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그는 마음속으로


"나도 인간이다.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 실수를 한 이후에 잘 처리해서 안전하게 내렸으니 잘한 거야!'라는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목소리와


"야, 이게 뭐니. 안 하던 실수를 다하고 , 너 자신이 지금 비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맞아?"라고 핀잔을 주는 자책의 목소리가 동시에 싸우고 있었다.


한동안 그는 이 두 목소리 사이에서 갈등을 할 것이다. 그러다 오래지 않아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의 답을 찾아낼 것이다.


1시간 전 두바이 Terminal Area 안쪽 고도 8000피트 강항중


"Flight 000 Descend 2000 feet Clear for ILS 30L Report Established(2000피트로 강하를 허가합니다. 활주로 30 좌측 활주로로 계기접근을 허가합니다. 완전히 전파를 잡으면 보고하세요.)"


기장 Jay는 부기장이 Readback을 하는 동안 고도계에 2000피트를 세트 하고는
"인디아 노벰버 델타 마이크, Identified. Approach Mode Engaged.(계기 접근 코드가 정확함. 접근 모드를 연결!)"


간략히  콜 아웃을 하고는 그들의 눈높이 정도에 위치한 중앙 컨트롤 패널의 APPR 버튼을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렀다.


곧 그의 앞 계기 위에 접근을 위해 필요한 Localizer와 Glide Slope전파를 잡을 준비가 되었다는 'LOC GS'라는 코드가 시현되었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접근 허가를 받은 조금 특이한 경우이지만 모든 계기가 정상적이었고 벌써 항공기는 계기접근의 이상적인 3도 강하 각에 매우 근접한 채 천천히 강하중이었다. 곧이어

계기접근을 위한 두 개의 모드(좌우를 조절하는 Localizer와 상하를 조절하는 GS)가 동시에 녹색으로 바뀌었다.

"Localizer and Glide Slope Captured, Missed Approach Altitude 3000 feet Set"

"전파를 잡았고 나중에 고 어라운드를 위한 3000피트를 미리 선택함!"


그 사이에  그의 오른손은  비행모드 패널을 조절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Speed Brake 레버를 반쯤 당겨 잡고 있었다. 210 나트의 속도로 3도 강하 각 Glide Slope을 물고 내려가다 보면 항공기 특성상 자연스럽게 속도가 증가된다. 지금 그는 양쪽 날개 위의 스포일러라는 조종판을 세워 와류를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속도가 늘지 않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자칫 지금 5마일 앞에 날고 있는 전방 기와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면 그가 미쳐 활주로를 개방하기도 전에 뒤따르던 그의  항공기가 활주로에 진입하게 되는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 정확한 속도 유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때 관제사의 예상치 못한 지시가 전달되었다.

"다른 항공기 때문에 그러는데요. 혹시 2000피트까지 먼저 내려가서 Glide Slope을 다시 잡아줄 수 있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


곧바로 부기장이 기장을 쳐다보면 '어떻게 대답할까요?'라는 표정으로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그가 바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예 문제없습니다. 고도 2000피트로 먼저 내려가서 Glide Slope을 다시 잡겠습니다. "

"아 감사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안정적인 상태에서 이제 물었던(Engaged) 계기접근 전파를 풀고 2000피트로 먼저 내려가서 다시 전파를 잡아야 한다.


우선 기장이 오른손을 들어 APPR 버튼을 눌러 그간 물고 있던 로컬라이져와 글라이드 슬로프 모드를 해제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LOC 버튼을 눌러 좌우 경로를 유지하는 전파만 다시 연결하였다. 이어서  곧 계기에 녹색으로 LOC이라는 코드가 시현되었다.


"Localize Capture"  그가 이 말을 콜 아웃하고는 다시 쓰고 있던 Speed Brake를 좀 더 당겨 강하율을 증가시키자 777이 그간 유지하던 3도 강하 각 아래로 고도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Glide Slope의 위치를 지시하는 동그란 포인터가 그들보다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항공기는 이제 3도 강하 각 아래로 내려가 2000피트에 도달 후 다시 Glide Slope전파를 잡아야 한다.


곧이어 또다시 관제사의 지시가 이어졌다.

"Flight 000 Keep Speed 180 till 10 then 160 till 4(지금부터 속도를 180 나트로 줄여 10마일까지 유지하고 그곳에서 다시 160으로 줄여 활주로 4마일 전까지 유지하세요."


Readback을 마친 부기장을 향해

"Flaps 15(플랩을 15도까지 내려줘)"

이어서 플랩이 내려오기 시작하자 그가 속도를 Flap 15에 맞는, 지금 185 나트 옆에 포인팅 되고 있는 화살표까지 속도조절 나브(KNOB)를 돌려 줄어주었다.


그 사이에 속도를 더 줄이기 위해 그가 최대로 Speed Brake를 당기자 순간  속도계의 Trend Vector 화살표(10초 후에 도달할 속도의 가감속 경향을 미리 보여줌)에 속도 감속이 확연히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강하율도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 Vertical Speed Indicator에 눈에 들어왔다. 그가 재빨리 손을 움직여 현재 FLIGHT LEVEL CHANGE MODE에 있던 강하 모드를 VS(VERTICAL SPEED) MODE로 바꿔어 주고 스위치를 위에서 아래로 두어 번 돌려 강하율을 1000 FPM정도로 맞추어 주자 잠시 깊어졌던 기수가  올라오면서 다시 안정적인 1000 FPM(FEET PER MINUTE)로 항공기는 안정을 찾았다.


항공기는  지금 날개 위의 14개의 스포일러들이 모두 최대 각도로 들어 올려져 와류를 만들며 빠르게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속도가 190 나트 정도를 지날 즈음 기장이 다시

"Gear Down, Flaps 20(착륙 바퀴를 내리고 플랩을 20도에 세트 해줘)"

지시를 받은 부기장이 왼손을 뻗어 Gear Lever를 내리자 곧이어 Gear가 Gear Door가 열리면서 항공기의 배 바닥의 기어 도어가 열리며 그 아래로 육중한 랜딩기어가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진동과 랜딩기어에 스치는 바람 소리 그리고 유압 모터의 소음들이 잠시 동안 때론 둔탁하고 또 동시에 날카롭게 섞이고 있었다.


부기장이 이어서

"Cabin Crew Prepare for Landing"을 PA로 방송을 하고 Lading Checklist 버튼을 눌러 아래쪽 디스플레이에 시현시켰다. 이 모든 과정이 거의 매 초 쉼 없이 진행 중이었다. 지금 조종실은 가장 바쁜 순간을 지나고 있었다.


기장은 그 사이에도 항공기가 2000피트에 Level Off를 하지 않고 정확히 2000피트 직전에 Glide Slope을 Capture 할 수 있도록(그래야 불필요하게 파워가 증가하며 소음을 만들지 않고 부드럽게 강하를 지속할 수 있다. ) Vertical Speed 버튼을 500 feet Per Minute까지 줄여두었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는 곧이어 Glide Slop을 물고 이어서 마저 플랩을 30도까지 내리고 Landing Checklist를 마칠 수 있겠다는 계획이 차례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 그가 고개를 들어  접근 등과 활주로 등이 내뿜는 환한 불빛으로 가득한 활주로를 스윽 바라 보고는 이내  시선을 다시 조종실 안쪽으로 옮겼다. 모든 것이 이상적인 상태로 접근은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이었다.


이제 곧  Glide Slope을 의미하는 GS가 녹색으로 바뀌면 곧바로 Missed Approach Altitude 3000을 선택하려 기장을 손을 들어 올리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의 앞 계기에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모드가 Green색으로 바뀌었다. 두 명의 조종사가 동시에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당황하고 있었다.

기장이 변화된 모드를 먼저 읽었다.

 "ALT"(현재 고도를 유지하는 모드)

동시에 Glide Slope 포인터가 빠르게 항공기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지금 항공기는 급격히 높아지고 있었다. 

접근 관제사를 도와주기 위해 잠시 해재(Disengaged)했던 Glide Slope 모드를 다시 선택하는 것을 기장도 부기장도 바쁜 조종실에서 그만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부기장이 거의 동시에

"기장님, Auto Pilot을 풀고 누르시죠!"

기장이 들어 올렸던 손을 그대로 유지한 채 손바닥을 펼치더니 아무 말없이 거칠게 위로 세워 올렸다.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였다. 

이제 부기장은 기장이 상황 판단을 하도록 잠시 시간을 기다려 주어야 한다.

이윽고 기장이 결심을 한 듯 고통스럽게 말을 꺼냈다.  


 "Discontinue Approach!" 우리는 이번 접근을 중단한다.


부기장이 순간 이 결정이 믿기지 않는 듯, 다시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Discontinue Approach가 맞습니까?"

"맞아. 관제소에 얘기해줘. 우리 2000피트 유지하고 접근 중단하겠다고"


 그리고 잠시 후  기장의 PA가 이어졌다.

"승객 여러분 기장입니다. 우리 항공기는 안정적인 접근을 위한 요건이 충족이 되지 않아서 접근을 중단했습니다. 이미 착륙을 위하 시퀀스에 다시 진입해 있습니다. 약 10분 후에 착륙하겠습니다. 착륙이 지연되어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회사의 Baggae Claim에 도착해 가방이 벨트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도중에 몇몇 승무원들이 차례로  다가왔다.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사이 Layover Suitcase가 컨베이어 벨트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때 승무원 중 한 명이 해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넸다.


"기장님. 오늘 착륙 이후에 직접 Go Around의 이유를 설명해 주시고 또 자신의 실수였다고 크루들 앞에서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껏 몇 번의 Go Around를 겪어 보았지만 오늘처럼 기장님께서 버스에서 크루들에게 직접 설명해 주신 경우는 처음입니다. 다른 분들은 무서운 얼굴로 아무 설명 없이 내내 시선을 외면하고 앉아 있어서 끝내 물어볼 수도 없었어요. 감사합니다. 기장님은 좋은 분이세요. 다음에 꼭 다시 같이 비행하고 싶어요."


실수는 누구나 한다. 조종사도 마찬가지다. 인간인 이상 우리는 언제나 완벽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 이후를 어떻게 끝맺음할 것인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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