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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Feb 03. 2020

솔로기들은 기지로 안전히 돌아오라!

시계비행 솔로 조종사들의  계기비행  RTB(Return to Base)








1994년 그해 여름엔 어디를 가든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 하루 종일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조종학생 숙소(BOQ)에서 장교식당을 거쳐 다시 활주로 건너편에 위치한 000대대까지는 콤비버스로 족히 10여분 이상을 기지 외곽도로 위를 달려야 했다. 공군 비행장의 기지 외곽도로가 통상 그러하듯  도중에  이착륙하는 항공기라도 걸리는 운 없는 날이면 꼼짝없이 빨간 신호등이 꺼질 때까지 몇 분을 기다려야 했다. 000 중등 비행훈련 대대는 다른 비행대대와는 달리 활주로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버스가 달리던 도중 열린 창문으로 아침부터 안면 보호장구를 착용한 사병들이 조금 전 베어 넘긴 비릿한 풀냄새가 차 안으로 진하게  밀려들어왔다.


그날은 중등 비행훈련 학생의 T37 공역 솔로비행이 계획되어 있는 날이었다.


이미 몇 주전에 장주(circuit) 솔로를 무난히 마친 스물다섯의 젊은 공군 조종학생들의 목에는 어느새 이전의 파란색 학생 조종사 마후라가 아닌 솔로를 다녀왔다는 의미의 빨간 마후라가 매어져 있었다. 그 사이 기량 미달로 1/3 가까운 동기생들이 하나둘 짐을 챙겨 BOQ를 떠났다.  

중등 비행 과정의 총 4번의 솔로비행 중 그 두 번째인 '공역(Airspace) 솔로비행'은 이륙한 이후에  대부분 기지 주변의 각자 달리 배정된 공역에 진입해  기본적인 상승  강하와  선회를 통해 공역 내에서 시간을 보내다 각자 부여된 RTB(Return to Base)시간에 맞추어 귀환하면 되는 어찌 보면 간단해 보이는 비행이었다. 이미 첫 솔로를 마쳐 빨간색 마후라를 목에 두른 학생들에겐 미래의 전투조종사로서 자신감이 어느새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앞으로 전투기 조종사의 필수 기량인 Dog Fight를 위한 특수기동 솔로와 편대 이륙을 의미하는 Wing Takeoff Solo를 마저 마쳐야 비로소 중등 T-37 비행훈련을 수료할 수 있게 된다.  

기량과 자신감이 확연히 올라온 지금 그럼에도 두번째 솔로비행이 단순한 통과의례로 쉽게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 몇 주간 여름철 변화무쌍한 날씨가 늘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계획된 솔로가 짙은 구름으로 인해  이륙을 앞두고 취소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들은 아직 시계비행조종사들로 계기비행 훈련을 받기 이전으로 계기비행 자격이 없었다.  만약 솔로를 나간 사이 기지가 구름에 덮여버리면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처할 수 있다. 이 경우 저명한 지상 지형지물인 CHECK POINT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RTB(기지로 복귀) 하는 항공기들은 관제소의 RADAR지원을 받거나 또는 이미 수립되어 있는 계기비행 절차를 따라 착륙해야 만 한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그 계기비행 훈련을 받기 이전이다.


나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고 그랬던가.


이날 학생조종사 소위들이 솔로를 나간 사이 기상예보는 조금 빗나갔고 이륙한 학생조종사들이 하나씩 몰고 나갔던 T-37 훈련기가  남해의 다도해 상공에서 기동을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 될 즈음 기지 상공에는 예보에도 없던 짙은 구름이 점점 들어차고 있었다.   처음엔 Scatter(하늘의 1/3을 가리는 상태)와 Broken(2/3를 가리는 상태) 성의 구름이 오락가락하더니 변덕스러운 여름날 지리산 인근에서 만들어진 구름들은 어느 사이 기지 상공을 완전히 뒤덮어버렸다.


VFR(Visual Flight Rule) 학생조종사들이 사천기지로 돌아오기 위해선 우선 기지 남서쪽의 코리도(회랑)를 시각적으로 식별해 통과 후에 외곽장주의 터닝포인트를  통과한 후 기지 활주로 상공으로 1500피트 고도로 진입해야 한다.   그런데 이날 고도 5000에서 1만 피트 사이에 BROKEN성(구름이 하늘의 2/3 정도를 가린 상태) 구름이 갑자기  밀려들어온 것이다.


이제 학생들은 눈으로 Corridor(회랑)을 식별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든 각자의 T37을 안전히 몰고 RTB를 해야 한다.


갑자기 몰려든 구름에 가장 먼저 당황한 것은 Runway Control(관제탑이 아닌 조종사들이 따로 운영하는 활주로상의 통제시설)에 나가 있던 대대장이었다. 솔로기들을 내보낼 결심을 하기 전 그는 우선 Weather Check이라 불리는 교관 조종사와 학생이 동승한 1기의 T37을 미리 이륙시켜 기지 주변과 공역 상공의 구름 상태를 점검을 수행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솔로를 강행했던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다. 지금 7대대의 솔로기들이 계기비행 상태로 기지로 귀환해야 할 상황에 처하자 그의 입술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런웨이 컨트롤에서 솔로기들의 귀환 시간이 다가오는 지난 한 시간 동안 초조하게 목을 빼고 하늘을 바라보던 대대장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끄응~’


외마디 신음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구름이 더 심해진다면 자칫하면 학생들이 RTB 하다가 회랑(CORRIDOR)을 식별할 수 없는 지경이 될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들을 뒤따르는 Solo Chaser가 있지만 그의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그 어떤 시나리오도 만만치 않았다. 교관 조종사들이라면 날씨가 나쁜 경우에 자연스럽게 계기비행으로 전환해 TACAN이나 PAR접근으로 착륙하면 그만이겠지만 이들 솔로기들은 아직 계기 비행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신참들이다.  


초조해하던 대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이 라디오 교신은 기지 작전과와 비행 단장실에도 연결되어 있다. 모두가 그의 이 지시를 모니터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막 Initial (활주로 상공 1500 feet)에  진입하는 훈련기 하나를 그가 불렀다.


“현재 구름이 몇 피트 사이에 걸리나?”


대대장의 지시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지체 없이 답변이 이어졌다.


“ 현재 기지 남쪽 코리도 상공에 1만 피트에 구름 진입돼 5000 피트에서 클리어 됩니다. 5000피트 이하 구름 없고 Seven Mile Clear입니다!”


대대장은 순간 마이크를 잡은 손을 힘을 주어 움켜쥐었다. 다행이다. 일단 코리도만 식별해 강하를 하다 5000피트 이하로 내려오면 시계비행 상태를 유지해 솔로기들이 안전하게 착륙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2편대장 교관 김소령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그 순간 솔로를 나가 공역에서 RTB(RETURN TO BASE)를 막 시작한 학생들에게도 실시간으로 전달되었다. 그의 말처럼 현재 사천기지 남쪽의  시계접근 회랑은 구름 속에 잠겨서 식별이 불가능한 상태다.


지금 솔로비행 중에 혼자서 조종간을 잡고 있던 7명의 조종학생들의 머릿속엔


“젠장, 일만 피트에서 5천 피트까지 운중 비행을 해야 한다니, 코리도가 보이긴 할까? 아무래도 안 보일 것 같은데..”


그때 대대장의 목소리가 다시 대대 주파수에서 울렸다.


“전 솔로기들에게 알린다. 대대장이다. 현재 기지 남쪽 코리도에서 기지 상공까지 1만 피트에서 브로큰 성 구름 진입 후 5000 피트까지 운중 비행이 예상된다. PIREP(조종사의 기상보고)에 의하면  5000 피트 이하는 Seven Mile Clear(구름 없이 시정 양호함) 상태로 외곽장주 진입에 문제없다. 솔로기들 이상 수신했으면 보고해라. “


이어서 공역에서 솔로 중이던 학생들이 응답을 시작했다.


“31 COPY(인지했음), 41 카피, 61 카피, 71 카피.......”


절도 있는 솔로 학생 조종사들의 대답에 라디오에서 한참을 이어졌다.


남해도 상공에서 솔로를 마치고 복귀하던 김중위가 기지를 향해 RTB를 시작하자 곧 그의 눈앞에 사천과 고성 삼천포 방향으로 OVERCAST(구름이 하늘의 대부분을 가린 상태) 성 구름이 어느새 운해를 이루고 있는 것이 눈 앞에 들어왔다.


“흐음... 저건 BROKEN 구름이 아니라 아주 운해잖아."  


이미 기지 쪽 하늘 아래에는 코리도(시계비행 회랑)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구름이 꽉 들어차 있었다.  진양호와 진주 남쪽 VFR(시계비행) 장주(비행경로) 진입을 위한 첫 번째 통과지점인 고성과 삼천포는 이미 시각적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했다.


후일담이지만 그해 겨울 기지로 귀환하던 두대의 호크 편대가 무리하게 시계비행을 유지하려다 금오산에 충돌해 전원 순직한 사고가 발생한 날도 비슷한 날씨였다.


갑자기 그가 오른손을 쭉 뻗어 RMI(Radio Magetic Indicator)의 계기 니들 위에  손가락을 가져다 데고 무언가를 그려보고 있었다. 다행히 이 낡은 T-37의 유일한 항법장비인 RMI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한다면 공식적으로 아직 이들 학생들은 계기비행을 할 수 없는 초보 조종사들이다. 그런 그가  왼손으로는 조종간을 잡은 상태에서 오른손 검지를 펼쳐 각도를 틀어가면서 RMI위에 무언가를 그려내고 있었다. 계기의 NEEDLE TOP은 지금 사천기지에서 발사하는 TACAN 전파신호를 정확히 지시하고 있었다. 지시계의 바늘의  탑(머리)만 따라가면 기지 상공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기지 인근의 진입 회랑을 계기를 통해 머릿속에 그려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지금 기지의 위치와 시시 각각 이동하고 있는 나의 위치 그리고 회랑의 체크포인트를 이 작은 RMI를 이용해 머릿속에 그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금  RMI에 FIX TO FIX라는 계기비행 테크닉을 사용해 자체 계기 항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당시 사천기지엔 레이다가 없었다. 레이더가 있다 하더라도  초보 조종사로 계기비행 자격도 없으니 소용이 없겠지만.


김중위는 아직 실전에서 한 번도 이 방법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그간 RMI를 그린 그림을 코팅하여 만든 연습용 계기로 혼자서 연습을 해 보았을 뿐이다.   말없이 혼자 몰고 있는 T-37의 텅 빈 COCKPIT에서 그가 내뿜는 산소호흡기 호흡음만이 그의 귓가에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쉬익, 쉬익'


고도를 낮추던 그의 T-37이 1만 피트를 통과하며 구름에 진입하자 순간 시계 ZERO상태에서 훈련기가 한번 위아래로 크게 요동을 쳤다.

 

"9000피트, 8000피트,... "


그는 속으로 고도를 카운트하면서도 중간중간 다시 손가락을 들어 올려 자신의 현재 위치와 진행방향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지도 위 항공기의 위치를 계속 UPDATE 하고 있었다. 더불어 그의 오른쪽 다리 위에 차고 있던 KNEE BOARD에서 기지 주변의 시계비행 회랑의 RADIAL(방위)과 DME(거리)가 그려진 차트가 어느새 꺼내져 있었다. 만약 오늘 그의 계산이 잘못된다면 그는 최악의 경우 인근 금오산 정상에 충돌할 수도 있다. 분명 그의 뒤를 따르는 SOLO CHASER가 이 상황을 모니터하고 있겠지만 다행스럽게 조금 전까지 아무 조언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비행경로가 회랑의 정중앙을 정확히 통과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고도, 자세, 속도”


그는 스스로를 안정시키기 위해 눈으로는 계속 계기를 확인하며 입으로 낮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순간순간 구름과 구름 사이의 'Between Layers'에 도달할 때마다 간간히 다시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바닥을 가리고 있는 구름으로 인해  시각을 통한 위치 판단은 불가능했다. 그는 매번 다시 고개를 숙이고 계기에 집중해  파이렙에서 구름의 바닥(Bottom)이라고  전했던 5000피트까지 안전하게 T-37의 고도를 낮추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다시 대대장의 목소리가 대대 주파수를 통해 흘러나왔다.

매우 침착한 톤이었지만 사실 대대장은 지금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한 채 벌써 한참을 외곽 장주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대대장이다. 현재 코리도 통과하고 있는 솔로기들에게 알린다. 아.. 코리도 식별 가능하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여기저기서 라디오로 솔로기들의 박력 있어 보이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Three Two 식별 가능합니다! Four Two 식별 가능합니다!........”

한참 동안 솔로기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수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구름을 막 뚫고 나온 김중위의 앞에는 예상대로 기지 외국 장주의 터닝 포인트인 진주 시내의 제지공장 굴뚝이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맨 먼저 회랑을 통과했던  1번 솔로기의 위치 보고가 타워 주파수에서 울렸다.

 

"Three Two 터닝 포인트! Four Thousand Feet!(외곽 장주 터닝 포인트 4000피트 통과 중)"





그날 솔로를 마치고 복귀한 학생들이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장구반에서 낙하산과 헬멧을 반납하는 순간 그들 뒤로 어느새 솔로 체이서를 맞았던 교관 박소령이 낙하산을 매고 들어섰다.  


“ 야, 니들 구라가 장난이 아니던데, 고성이 보여? 삼천포가 보여? 나는 당최 하나도 안보이던데, 어떻게 니들이 기지로 살아 돌아왔을까? 흐흐흐”

박소령은 검게 그을린 얼굴 사이로 순간순간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학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학생들에게  다가가 가볍게 주먹을 날리는 시늉을 하다가 그중 하나의 목을 휘어잡았다.


“ 이 자식들,  눈치가 제법이야.. 니들 다 계기비행으로 돌아왔지?”


비행 내내 착용했던 헬멧과 산소마스크 자국이 얼굴에 깊게 배겨 있고 땀이 흘러내려 번들거리는 머리카락들이 아무렇게나 눌려있는 솔로를 마친 일곱 명의 앳된 학생조종사들이 이 말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이고 있었다.


아직도 그중 한 학생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있던 그가 앞서 걷기 시작하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모두 휴게실로 집합! 오늘 아이스크림은 내가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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