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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Feb 05. 2020

응급실 의사 같은 조종사


종종 하늘을 나는 나의 직업과 비교할 다른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해보곤 한다.


물론 가깝게는 배를 모는 선장, 기관사, 버스 기사 또는 트럭 운전사 등이 우선 머리에 떠오르지만 조금 방향이 아니 많이 방향이 틀어지긴 했어도 어쩌면 '의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무슨 과의 의사와 비교가 가능할까?  응급의학과  의사?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일같이 비상이 걸리는 일은 없으니 이분들과 비교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면 내과 의사?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고 외과적 수술을 바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약을 처방해 환자를 치료 하는 것이니 통상 기장인 내가 아무 일 없이, 여기서 아무 일이란 예를 들어 비행 중에 환자가 발생하지도 않고 항공기의 어느 부분이 나빠서 순간 응급실 당직의 처럼 정신없이 처치를 해서 환자를 살리듯 항공기와 승객을 살리는 일도 없고, 또 날씨가 나빠서 이륙이나 착륙에 애를 먹는 일이 없는 그런 평탄한 비행을 말한다. 그런 '아무 일 없는 비행'을 하는 날은 조종실이 마치 내과의사의 진료실과 비슷한 환경인것 같기도 하다.


지난 1년여를 되돌아보면 나는 그간 2번의 비상에 조우했고 그중 한 번은 날씨 그리고 다른 한 번은 항공기의 유압 문제였다. 그리고 날씨가 나빠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느낌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착륙을 해야 했던 '폭풍 속의 착륙'도 두 번정도 겪은 것 같다. 사실 이 정도는 평균보다는 조금 과한 수준의 '이레(Irregular)라고 볼 수 있다.



에어라인 기장의 삶이라는 것이 이렇다. 열에 아홉은 내과의사처럼 차분하게 한 명 한 명 예약제로 방문한 환자에게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해주고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일주일 후에 다시 뵐게요~"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일 년에 한 번 또는 운이 없으면 몇 달에 한 번 꼴로  "선생님 안녕하세요."하고 웃으며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가 갑자기 눈앞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거나 심한 경우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세게 부딪혀서는 피를 흘리는 외상이 발생하는 경우랄까 그런 경우가 생긴다.



재미난 것은 조종사들도 어떤 조종사는 내과의사같이 비행을 하는 조종사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응급외과 의사같이 비행을 한다. 이 구분은 좋은 비행기 즉 777이나 380같이 안전한 비행기, 정비를 믿을 수 있는 좋은 항공사의 비행기를 모는 조종사는 대부분 내과 의사처럼 비행을 할 확률이 아주 높다. 그 반대로 내가 사는 아라비아에 인접한 이란 같은 곳에서 아주 낡은 F100 같은 민항기를 비행하는 조종사라면 분명 그는 이미 아주 유능한 '응급실 당직의'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비행기는 30년이 다 되어가고 미국의 경제제재로 부품의 공급마저 원활하지 못하니 이륙한 후에 엔진이 하나 꺼진다 해도 그러려니 할 정도의 '담'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비행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오늘 나는 응급외과의사에게 필요한 순발력과 상황판단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내과의사 같은 기장이고자 기도하는 중이다. ^^

퇴근길에 잠시 벗어 둔 제킷.조종사도 의사처럼 최소 10년 이상 부기장을 거쳐 기장 3년차에 도달하는 나이 40무렵에 최고의 기량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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