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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Feb 17. 2020

어린 왕자와 여우

시공을 초월한 기억



해가 지는 지평선을 한동안 우두커니 바라보던 '길들여진' 여우가 물었다.

"시공을 초월한 공간이라는 것이 이 세상 어딘가에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걸까?"


어린 왕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얼굴에 가득 웃음을 담고 대답했다.

"그럼 존재하지. 멀리 있지 않아. 바로 우리들 안에 있지. "

여우가 한발 다가서며

"우리 안에 시공을 초월한 곳이 존재한다고?"

지는 태양을 향했던 여우의 눈이 어느새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그건 우리의 기억이 아닐까? 지금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는 해의 기억과 조금 뒤 우리 등 뒤에서 떠오를 해를 바라보게 될 기억에  '시공간적 거리'가 생기게 될까?"

여우가 말했다.

"어려워. 다른 말로 설명해주면 안 될까?"

어린 왕자가 다시 말했다.


"우리 모든 생명체 속에는 시공을 초월한 공간이 기억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다가 생명의 불꽃이 꺼지는 순간 그 공간도 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여우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난 닭을 잡으러 갈 시간이야."


우리의 기억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착각하곤 하지만 기억 속엔 시공의 구분이 없다. 오래된 기억도 새로운 기억도 시간 순서 데로 줄 세워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본 적이 있는가?

 

수십 년 전 기억이라 덜 선명하지도 어제 일이라 더 생생하지도 않다. 단지 나 자신 기억들에 시간의 딱지를 붙여 둔 것일 뿐 결코 시간이 기억을 줄 세운 적은 없다.


공간의 구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10년 전 다녀온 해외여행의 기억과 바로 어제저녁 가족과 식사를 한 시내 어느 식당의 공간적 기억의 구분이 더 멀거나 더 가깝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이해한다면


시공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는 오직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일뿐 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 시간'은 분명 흐르고 공간은 절대적 상대적 거리를 유지한다.


그럼에도 사람은 시공을 초월한 그 어떤 상태와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며 발견하기를 갈구한다.


마치 흑백 텔레비전 밖에 없던 세상을 사는 시청자들이 색이 선명한 세상에 살면서도 흑백으로만 존재하는 공간이 이 세상  어딘가 실제 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는 것과 이 일이 과연 다른 것일까?


'시공을 초월한 상태' 란 것은 결국


기억이라는 한계, 즉 시공을 4차원이 아닌 점으로 인식하는 ‘1차원적인  인위적 허상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우리 생명체의 태생적 한계가 낳은 아둔한 환상은 아닐까? 그래서 여우에게 시공을 초월한 존재에 대해 말을 전하고는 진리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난 순례자보다 지금 닭을 잡으러 떠난 여우가 결과적으로 더 현명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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