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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19. 2019

안개 낀 모스크바 도모데도보에 자동 착륙하다.

기장의 머릿속 생각

오후 두 시가 넘어 도착한 도모데도보(UUDD) 공항에는 여전히 짙은 안개가 끼어있었습니다  모스크바 상공에 도착해 강하 시작점을 알리는 TOD(TOP OF DESCENT)가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여전히 도시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고도 1만 피트 정도에 마치 두꺼운 카펫을 깔아 둔 듯 하얀 구름바다가 어디 한 곳 태양의 빛이 새어 들어갈  틈을 남길세라 촘촘하게 이 겨울 왕국의 하늘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낭만은 여기까지. 기장인 저는 이곳에 안전하게 내려야 합니다  


현재 기온은 영상 1도, 이슬점 온도는 0도. 바람은 220방향에 6 나트로 거의 불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 경우 안개가 소산 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출발 전 예보에는 시정 6000미터로 이 즈음 회복될 것이라 해놓고는 정작 도착해 보니 안개가 여전합니다  

모스크바에 있는 세리미테보(UUEE)나 누쿠보(UUWW) 등의 날씨도 역시나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안개에 잠겨 있습니다.


만약 안개가 너무 심해 활주로가 마지막 순간에도 보이지 않아 GO AROUND를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를 대비해 저는 상황별로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어 두어야 합니다.


이곳 날씨가 나쁘면 다른 모스크바 내의 공항들의 착륙 계기접근 등급은 더 열악한데.. 그곳으로 회항을 한들 뭔가 하나라도 나을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늘 그렇듯 접근전 나의 계획을 명확히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오늘 부기장은 24살밖에 안된 두줄의 그것도 모스크바엔 처음 와보는 신입입니다. 그가 판단해 줄 결정은 적어도 이 순간에는 없어 보입니다. 비행 중 그가 물어 오는 질문은 아직 기본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도모데도보 공항의 자동착륙 등급은 모스크바의 다른 공항보다 높다.

둘째, 도모데도보는 현재 Single Runway상태다. 원래 3개의 활주로 중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서쪽 14R 만 사용된다.

셋째, 모스크바 내 모든 공항의 시정은 현재 차이가 없이 자동 착륙해야 하는 저시정 LOW VISIBILITY상태다.

넷째, 나에겐 모스크바 바깥의 공항, 예를 들어 세인트 피터스버그 같은 기상이 좋은 곳으로 회항할 연료가 없다.(예보가 저시정 상황이 이렇게 지속될 것이라 말했다면 나는 피터스버그로 회항할 충분한 연료를 탑재했을 것이다. 오늘 예보는 종종 그렇듯 조금 빗나갔다)


나의 접근전 계획

하나. 기상이 Below Minimum 즉 활주로가 결심 고도 50피트 상공에서 보이지 않는 경우라도 함부로 회항하지 않는다. 다른 공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둘. 오늘 내가 반드시 회항해야 할 상황은 도모데도보의 유일한 활주로가 항공기 사고로 폐쇄되거나 장비 이상으로 자동착륙을 위한  CAT3 A 등급을 상실하는 경우다  이 경우 나는 계획된 UUWW로 지체 없이 회항한다.

셋. 만약 UUWW까지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땐 쉐레미테보(UUEE) 공항으로 회항한다. 이 경우 다른 항공기들도 상황은 동일하므로 결심은 빨라야 한다. 필요하면 비상 선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지고 있는 연료는 12톤이며  회항에 필요한 최소 연료는 8톤이다. 4톤의 여유 연료로 나는 약 40분간 홀딩할 수 있다.


이렇게 상황별 시나리오와 BACKUP의 BACKUP까지 머릿속에 준비하고 TOD 강하 시작점을 지나 고도를 낮추고 구름 속으로 진입해 마침내 활주로 Approach Lights(접근 등)는 약 100 피트에서 식별하고 안전히 AUTO LANDING을 하고 비행을 마쳤습니다.


공항의 자동착륙 등급은 CAT3A로 미니멈은 50피트였습니다. 이 경우 50피트에서도 활주로 등이 보이지 않았다면 GO AROUND 해야 했을 겁니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계획한 데로 정시에 도착한 평온한 비행이지만 기장의 머릿속은 이렇게 복잡합니다. 적어도 착륙할 때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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