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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0. 2019

공군이 사랑한 해군 조종사

공군 비행훈련

공군이 사랑한 해군 조종사

“저 해군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무리 해도 비행이 늘지도 않고 전 아무래도 배를 타야지 비행기를 탈 적성이 아니었나 봅니다. 너무 상심 마시고 그냥 원대복귀시켜주십시오”
교관 박소령은 지금 중등 비행훈련 위탁교육 중인 해군 박 중위를 설득(?) 중이다.
“너 지금 돌아가면 공군에서 도태되어 왔다고 해군이 너를 반갑다고 잘 돌아왔다고 반겨주겠어? 돌아가서 배를 타더라도 비행교육 수료하고 돌아가!”
황당한 상황이다. 입과자의 30% 정도만 살아남는 공군 비행훈련을 그것도 해군에서 위탁교육을 온 타군을 지금 교관이 남아서 수료하라고 오히려 설득하고 있다.
해군 박 중위는 해군 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영어에도 능통한 해군사관학교 럭비부 출신의 엘리트 장교다. 하지만 이러한 경력이 공군 비행훈련 수료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공군 사관학교 출신조차도 졸업성적 우수자들이 비행교육에서 받는 특혜가 없을 정도로 공군 비행교육은 철저히 비행기량 위주로 평가한다.
현재까지 이미 도태된 5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동기들은 솔로비행을 마친 상황이지만 박 중위만 아직 기량이 올라오지 않아 담당 교관이 애를 태우고 있다. 문제는 착륙 마지막 조작인 플레어(항공기를 착륙자세로 바꾸며 강하율을 줄여 소프트하게 착륙하는 기술)의 감을 박 중위가 아직 못 잡은데 있다.

다행히 다음날 동기생 중 맨 마지막으로 박 중위의 솔로비행이 잡혔다.
먼저 교관 조종사와 동승해 2번의 이착륙 훈련을 수행 후 항공기는 활주로 끝에 정지하고 교관만 하기하면 솔로가 진행되는 것이고 만약 이런 과정 없이 항공기가 주기장으로 바로 돌아간다면 그날의 솔로 비행은 취소되는 것이다.
교관 동승의 두 번의 이착륙 후 항공기가 활주로 끝으로 다가온다. 그대로 주기장으로 향한다면 박 중위는 이제 해군으로 원대 복귀해야 한다. 이는 그의 군생활에 최대 오점이 될 것이다.
찢어질 듯 날카로운 T37특유의 엔진 소음을 유지한 채 항공기가 정지한다. 엔진이 돌고 있는 상태에서 캐노피가 열리고 교관이 뛰어내린다. “솔로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 교관의 표정이 밝지 않다. “야 담배 좀 주어봐” 담배를 받아 한 모금 빨아쥔 박소령의 손이 떨린다. “아이씨, 이제 난 몰라, 비행기를 때려 먹던 뿌셔 먹던.. 제발 살아서만 돌아와라. 아이 정말~”

그날 아침 전체 브리핑.
중대장이 묻는다.”박 중위 오늘 솔로 나가면 플레어는 어떻게 할 거야?’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몰린다. 무슨 대답을 할까.
잔뜩 힘이 들어간 과장된 목소리로
“본 대한민국 해군 장교 박중위! 국까~와 민족을 위해 땅김 하겠습니다~”
일순간 브리핑룸은 뒤집어졌다. 모두가 오래간 만에 배꼽을 잡고 웃고 있다. 교관도 학생들도. 중대장은 그렇게 웃으며 자리를 비웠고 덕분에 전체 브리핑이 오랜만에 일찍 종료되었다.

그날 그의 ‘국가와 민족을 위한 땅김’ 덕에 다행히 항공기도 박중위 자신도 상하지 않고 솔로는 무사히 끝났다.

해군 박 중위를 공군 교관들이 이렇듯 반드시 수료시켜 해군으로 보내려 애를 태운 이유는 물론 박중위 자신이 우수한 인재이기도 하지만 이전 초등비행에서의 일화가 계기가 되었다.

5개월 전 대한민국 공군사관학교 성무 비행장 초등 훈련과정 학생 브리핑실

박 중위가 불려 나와 엎드린 상태에서 벌써 6대째 BD를 맞고 있다. 불시 내무검사 중 그의 책상에서 발견된 포커카드가 발단이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누구 내무실에서 발견했는지 밝히지 않은 채 전체 조종학생에게 자백하기를 요구하던 교관들이 급기야 아무도 나서지 않자, 박 중위를 직접 불러내 이미 6대의 BD를 먼저 가하고 자백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보통사람 같으면 이 정도 풀스윙의 BD를 한대도 견디기 힘들 텐데 6대까지 올 동안 럭비로 단련된 박 중위는 아직 미동도 없다. 교관들은 이제 이성을 잃어가고 있다.
붕~ 다시 붕~ 브리핑실의 허공을 가르며 또다시 가혹할 만큼 체중을 있는 데로 얹은 채벌이 이제 10대를 넘어간다. 바닥의 박 중위는 낮은 신음소리만 한차례 내뱉었을 뿐 여전히 처음 자세 그대로다. 이제는 때리는 윤 소령의 얼굴에 급기야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는 지금 순간 이성을 잃은 채 숨소리마저 거칠어져 있다. 더 이상은 무리다. 윤소령 자신도 알고 있다. 분명 문제가 있다. 이렇게 까지 버틸지 몰랐다. 급기야 윤 소령은 주머니에서 포커카드를 직접 꺼내 들어 들이 되며 “여기 니 책상에서 내가 꺼내온 카드가 이렇게 있는데 장교가 거짓말을 해. 해군 사관학교에서 그 따위로 배웠어?” 그간 박 중위의 엘리트 장교로서의 인품을 높이 샀던 교관들이기에 더 실망감이 컸다.
심각한 상황이다. 이 정도면 오늘 이 장소의 처벌로 끝날 일이 아니다. 해군으로 불명예 원대복귀를 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일순간 모두가 절망적인 표정이다..
이때 엎드려 있던 박 중위가 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본 해군 장교 박중위 해사생도로서의 명예를 걸고, 단 한 번도 그 포카 카드로 게임을 해본 적도 없고, 포카를 할 줄도 모릅니다. 그 카드는 원양실습을 나갔던 동기생이 선물로 보내온 겁니다. 자세히 보시면 포장도 뜯지 않을 것을 아실 겁니다”
일순간 당황스러운 표정이 윤 소령의 얼굴에 번진다. 지금 박 중위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한 명의 공군 장교에게 전체 해사생도의 명예를 걸었다. 이 말에는 1000마디 다른 말보다 큰 무게감이 있다. 윤 소령도 이 짧은 단어 하나가 전달하는 그 절대가치의 엄중함을 너무도 잘 안다.

“생도의 명예”

여전히 왼손엔 베트를 오른손엔 카드를 쥔 채인 교관이 순간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멈칫하더니 급히 다시 카드를 내려다본다. 잠시 후 고개를 숙인 그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진다. 양손은 이미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아무렇게나 떨구어져 있다. 내려놓지 못한 야구 방망이와 천정의 조명을 받아 야속하게 손 안에서 반짝이는 아직 개봉도 안된 카드를 내려다보면서..... “내가 지금 도대체 뭘 한 거지?..........”

“일어나! 너는 남고 전원 BOQ 속소로 퇴근!”
그날 밤 윤 소령은 의무실에서 치료 후 귀대한 박 중위의 숙소를 밤늦게 찾았다. 멘소래담 로션과 파스 그리고 위스키 한 병을 들고.

박 중위는 한동안 다리를 절었다. 처음 며칠은 눈에 띄지 않게 동기 해군 장교들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이후 그는 초등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후 중등과정에 입과한다. 그를 위해 대대장은 특별 추천서를 썼고 더불어 윤 소령은 직접 중등과정 교관 동기생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려 간곡히 부탁했다는 전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수료시켜서 해군으로 보내달라고.

만약 그날 박 중위가 비굴하게 몇 대의 BD에 굴복해 바닥에 먼저 뒹굴었거나, 12대까지 이어지는 동안 일어나 반항이라도 하였다면 그가 중등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공군 교관들 모두가 그를 살리기 위해 그처럼 발 벗고 나서진 않았을 것이고 더불어 그의 인생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 후 그는 대한민국 해군 초계기 P3항공기의 에이스로 영광스러운 군생활을 마쳤다. 그가 수료하며 해군에 복귀할 때 그의 인품을 높이산 비행단장의 매우 특별한 추천서가 첨부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로서 공군도 해군도 명예를 지켰다.

내가 동기임에도 그의 훌륭한 군인정신을 존경했던 이 글의 주인공은 현재 TWAY항공에 있는 박일수 기장입니다.
혹 TWAY항공기를 이용하게 되면 유심히 PA를 들어보시기를 혹 그날처럼 잔뜩 목소리를 깔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플레어를 한다는 박일수 기장이 아닌지.
참고로 이 글은 본인의 동의를 거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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