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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Feb 27. 2020

떠나온 우주가 그리워 슬프다는 그녀



나도 종교나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서, 비행이 없는 날엔 명상도 하고 

어제처럼 비행이 있는 날에는 
777 이 순항고도에 올라 자리를 잡으면 가끔 조종실을 찾는 크루들에게 어설프게 고민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그들과 나누는 이런 나의 엉성한 카운슬러 흉내가  어제는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

칵핏에 들어온 일등석 담당  ‘Anna’가 대뜸 자신의 손금을 보아달라고 돌아 앉은 내게 불쑥 두 손을 내밀기 전까진 모든 것이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우선 양손 모두 엄지 손가락에서 커다란 Buddha’s Eye를 발견하곤 

“식스 센스가 있네요. 사람들 마음을 잘 읽어요?”

내가 하는 일이 이렇다. 먼저 진짜 그러냐고 물어보게 되는 어설픈 사람이다. 어차피 나도 궁금해서 하는 일이니.

그렇게 물었더니, 이 분 이때부터 오히려 내게 철학관 수준의 손금 보는 법과 관상 얘기를 풀어낸다.

그때부터 주객이 바뀌었다.

홍콩 출신인 그녀에게 내친김에 

“그럼 내 손금도 봐주세요.” 하며 돌아 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전한 나의 손금은 

“매우 단순한 분이네요. 인생이 단 한 방향으로 끝까지 이어져 있어요. 중간에 한 눈도 안 팔아요. 그리고 에너지가 아주 맑아요. 사람들에게 힐러로서 역할을 하시면 좋겠어요. 아주 건강하세요. 특별히 평생 아프거나 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력한 우주의 보호막이 둘러싸고 있어요.”

이쯤에서 “ 이 사람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눈에는 마치 방금 어디에 숨어 한참을 울다 온 것 같은 깊은 슬픔이 가득했다. 왜 지금까지 이 슬픔을 내가 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그 갑작스러운 발견에 순간 당황하고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내가 물었다.

“그런데 그런 당신의 눈엔 왜 그렇게 슬픔이 가득한 거죠?”

궁금했다. 영적인 이해가 예사롭지 않게 깊어 보이는 그녀의 눈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엉뚱하게도 마치 실연당한 여인의 눈에서나 볼 수 있을 슬픔이 너무도 선명했다.

“알아요. 사실 저의 영혼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이라네요.”

그러며 나로선 처음 듣는 여러 이야기를 전해준다. 다오이즘에도 심취해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서로의 명상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을 훌쩍 넘겨 버렸다.

결국 참다못한 부기장 프리예쉬가 

“제 여자 친구가 저를 자꾸 밀어내요? 전 그녀가 너무 좋은데요. 어떻게 해야 하죠?”

이러며 우리 둘의 눈치를 살핀다. ㅎㅎ

야간 비행에 서비스도 모두 끝난 시간이라 승객들도 모두 잠든 시간에 
우리는 인도의 밤하늘 위를 지나며 프리예쉬의 연애상담으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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