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제이 Feb 26. 2020

홍콩으로 가는 비행

홍콩으로 가는 비행

원래는 에어버스 380이 들어가던 곳이다. 평상 시라면 승객들이 더블데크 2층으로 가득했을 비행이다.

777기장인 내게 지난밤 갑자기 이 비행이 떠 넘겨졌을 때 처음엔 또 누군가 비행하기 싫어 아프다고 콜씩을 한 것이리라 넘겨짚었다.

그런데 막상 플랜을 받아 보니  적힌 항공기의 이륙중량이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 7시간 비행할 777 이륙중량이 겨우 260톤이라니.

평상시보다 30톤이나 가볍다. 결국 이날 객실엔 93명의 승객과 14명의 크루가 홍콩으로 향하는 인원의 전부였다. 777 300ER은 40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다.

브리핑실에 들어가 보니 책상 위에는  마스크 10장과 손세정제가 언제 가져다 두었는지 덩그러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거북한 물건이 비행 전에 지급된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때에도 브라질의 지카 때에도 회사는 모른 척 그저 몇 자 적은 주의사항만 비행에 나서는 크루들에게 건네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홍콩에 도착하면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반드시 착용하래요."
사무장이 요령을 설명한다.

마지막 L1 DOOR를 닫고 출발하려는데 그녀가 다시 칵핏에 들어왔다.

"지금 이 시간부터 우리 회사 테헤란과 바레인 비행 모두 코로나 때문에 중지한데요!".......

홍콩에 도착해보니 상황은 떠나기 전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중해 보였다.

그 넓은 터미널에 깔깔대며 떠드는 사람들은 우리 크루들밖에 없었다.  

검역직원의 심각한 표정 사이로 공짜로 얻은 마스크가 신기한 것인지 연신 어린아이들처럼 웃고 떠든다.

이 순간 우리 모습이 전쟁터에서 웃는 아이들처럼 비현실적이다.

얼굴이 불편해 보이는 크루에게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회사에서 지급해 준 마스크 밑에 두툼한 산업용 마스크를 덧 대어 쓴 것이 보였다.

"자네 그러다간 바이러스로 쓰러지기 전에 산소 부족으로 먼저 질식할 거 같은데~. ㅎㅎ"

이 말이 재미있다고 모두들 마스크 속으로 또 키득거린다.

제발 내일 돌아갈 때까지 크루 중에 아무도 열 나는 이가  없기를. 열이 나면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남겨 두고 가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내 생각을 가진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