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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r 26. 2020

마지막 비행






의외로 승객 탑승을 일찍 마쳤다. 20분이나 일찍 일찌감치 서류들을 건네며 지상직원과는 악수도 나누지 않은 채


 "곧 다시 봅시다!"라는 조금 맹숭한 말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는 사무장에게 L1 DOOR(777의 좌측 첫 번째 문)을 닫아도 좋다고 엄지를 세워 신호를 주었다.




"그럼 기장님 Door는 언제 Arm에 둘까요?"


"제가 인터폰으로 알려드릴게요."




이 말에 사무장 모하마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종실을 나가며 오른쪽 위에 달려있는 보호 가드가 올라가 있던 조종실 플라이트 데크 엑세스 시스템 스위치 Flight Deck Access System Switch를


 "딱"소리를 내며 내리고는 '쿵'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는 객실로 사라졌다.




나는 이제야 이곳 필리핀 세부공항을 떠나  클라크 공항으로 향하는 1시간의  짧은 비행을  위해  기장방송을 시작했다.




기장방송을 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전면 창 밖을 바라보고는 잠시 감정이 흔들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생경한 풍경에 이 단순한 비행이 갑자기 너무도 무겁게 나의 마음을 누르기 시작했다.




창밖에 터미널 건물의 유리창 뒤로 우리가 두고 온 세부공항의 지상직원들이 언제부터인지 모두 나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기장방송을 마치고 지상에서 대기 중인 정비사에게


"Confirm All Ground Check Complete and Clear to Pressurize?(지상 점검이 모두 완료되었고 이제 유압을 작동해도 되겠습니까?)"


라고 인터폰을 주자 그가 바로


"Yes Captain. All Ground Check Completed. Clear to Pressurize.(모든 지상 점검 완료되었고 유압 작동하십시오.)"라는 평상시와 똑같은 앵무새 같은 답이 올라왔다.




부기장에게 눈빛으로 관제탑에 푸시 백 허가를 요청하라고 신호를 보내곤 그가 관제탑을 호출하는 사이 나는 동시에 중앙 페데스털에 있는 인터폰과 기장방송을 위한 전화기 같이 생긴 수화기를 빼어 들고는 사무장이 있는 L1을 선택했다.




"예 기장님?"


"이제 모든 도어를 Arm위치에 두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간 외면하고 있었던 정면을 다시 응시했다.


그냥 그들이 이제쯤 각자의 자리로 다들 돌아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순간 생각했다. 이 갑작스러운 감정의 일렁임이 당황스러워서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푸시 백이 시작되자 이제 터미널 빌딩 내의 지상직원들의 숫자는 더 늘어나 있었다. 모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거기에 더해 램프에 나와있던 화물과 정비직원들까지 한 줄로 도열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순간 이를 꾹 악물었다. 이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리가 주기장을 떠날 때까지 그들은 한참 동안 떠나는 에미레이트의 777을 향해 처음 그 자리에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은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날 세부와 클라크 구간에서 비행을 하는 민항기는 에미레이트 777 우리가 유일했다.




우리의 이 이 마지막 비행을 끝으로 세부의 지상직원들은 3개월간의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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