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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r 31. 2020

조종실에 뛰어든 꼬마 승객  

"애프터 랜딩 체크리스트 컴플리트!"

부기장 제이슨이 777의 커서 컨트롤 유닛(Curser Control Unit) 위로 그의  왼손 검지를 능숙하게 움직여 체크리스트 항목을 하나씩 클릭하며 내려가자 가장 아래에 있던 Checklist Complete 박스가 녹색으로 마침내 변했다.

"기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아주 좋은 비행 같이 할 수 있어서 저도 즐거웠습니다."


곧이어 기장 리처드는 왼쪽으로 몸을 돌려 아이들 책가방 만한 크기의  붉은색 바인더 즉 비행 로그를 꺼내 무릎에 올리고는 하나씩 공란을 빠르게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비어있었던 착륙 시각과 게이트 도착시각 그리고 연료 잔량까지 꼼꼼히 기록하고 마지막으로 결함란에는

"NIL DEFECTS(결함사항 없음)'이라고 대문자로 기록했다. (정비 로그의 모든 기록은 모든 항공사 공통으로 국제 공용어인 영어로 기입하여야 한다.)


이로서 또 한 번의 비행이 안전하게 종료되었다.


리처드가 불필요해진 서류들은 Trash Bag에 하나씩 구겨 넣고  비행 로그를 기록할 때 썼던 클립보드와 비행 중 라차드의 몸무게를 지탱해준 두툼한 방석을 하나하나 다시 플라잉 백에 집어넣었다.  


그 사이 부기장 제이슨이 먼저 일어나 조종실 도어 Access Sytem의 스위치를 감싸고 있던 가드(Guard)를 들어 올리고 엄지를 사용해  토글(Togle)을 위로 밀어 올렸다. "딱'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리고 이어 제이슨이 닫혔던 칵핏 도어를 활짝 열자 막 하기를 시작한 승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서 그는 우측 코트룸에 허리 위치 정도에 삐죽 나와있는 검은색 랜야드를 당겨 문에 장치된 똑닥 단추에 채워 문이 닫히지 않도록 고정했다.


곧이어  자신과 기장의 재킷을 코드 룸에서 꺼내 각자의 의자 등받침에 씌우듯 걸어두었다.


잠시 후 제이슨이 트레쉬 백을 들고 조종실 밖으로 먼저 나가는 것이 보였다.


라차드는 좌석 오른쪽 아래 부분에 장치된 흰색 전동 스위치 중 하나를 눌러 의자를 뒤로 밀어냈다.

'위~잉' 경쾌한 전동모터 소리와 함께 그의 몸무게를 지탱하던 좌석이 뒤로 밀려나며 빠져나갈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다소 부산하게 승객들이 하기하던 일등석 캐빈 쪽에서 다급하게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이 소리에 일어서려다 말고 열린 도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돼, 안돼... 아.... 기장님 ~ 기장님~"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었다. 상황은 바로 파악이 되었다.

신장이 리처드의 허리 즈음 올 만한 꼬마가 벌써 칵핏에 뛰어 들어와 그의 옆에서 조종석 계기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런 맙소사'라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그가 바로 화난 얼굴로 객실 쪽을 바라보았다.

사무장 죤이 바로 뛰어들어왔다.


"기장님 죄송합니다." 난처한 듯 기장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곧바로 꼬마를 일으켜 세우려 손을 앞으로 뻗었다.  


911 이후 조종실 보안이 전 세계적으로 강화된 것이 이제 햇수로 20년이 가까워진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어느 항공사도 승객이 조종실을 방문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일하는 회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중에서뿐만 아니라 지상에서도 승객의 조종실 접근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찰나의 순간 그는 고민했다.

 '이걸 어쩌지?'

 

'못 본 척 사무장이 이 꼬마를 데리고 나가도록 놔두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일이 이렇게 된 김에 이 아이에게 조종실 구경을 시켜주어야 하나?'


그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냥 두세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기장님?"

"예 그냥 돌아가서 일 보세요. 그리고 그쪽 꼬마야 너도 이리 와!"


조금 전에 칵핏으로 뛰어든 당돌한 사내아이의 한두살즘 어린 여동생으로 보이는 이쁜 여자아이가 꽃무늬가 들어간 하얀 원피스를 입고는 아빠의 다리를 두 팔로 둘러 잡고 서있는 것이 보였다.    이 모습에 그가 무너졌다. 캐이프 타운에  아이의 엄마와 같이 살고 있는 자신의 딸 첼시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 이혼했다.


잠시 후 그 당돌한 사내 꼬마 아이는 사진을 찍기 위해 리처드의 무릎에 앉아 있었고 그의 딸 챌시아를 닮은 여자 아이의 머리에는 금빛 태가 둘러진 그의 정모가 어느 사이 올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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