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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Apr 19. 2020

버스와 차장

지금 젊은 세대들은 겪어보지 못하였지만 오십을 넘기는 나 같은 올드보이들의 학창 시절에는 아침마다 버스가 콩나물시루 같았다. 지금은 운전기사님 혼자서 차문을 열고 닫고 요금도 대부분 교통카드로 처리하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수동이었고 그래서 안내양이라고 불리는 젊은 여직원이 뒤쪽 후문에서 운전사를 보조하는 일을 했다. 탑승하는 승객으로부터 회수권이라고 불리는 운임을 받고 다음 목적지에 내릴 사람이 있다를 ㅣ신호로 벨을 누를 권한도 그녀에게만 있었고 모두 탑승한 다음 문 옆의 차체를 '탕탕' 두 번 두드리며 "오라이(All Right)"라고 외치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다.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에는 짓궂은 녀석들의 장난도 넉살 좋게 받아 주어야 했고 나이 들어 힘들게 짐을 들고 탑승하는 노인분들을 도와 짐을 올리고 내려주는 일도 그녀들의 몫이었다.

내가 살던 옥천에는 직접 농사를 지은 나물들을 사람 크기만 한 커다란 보따리에 담아 아침 일찍 버스에 실어 대전의 역전 중앙시장에 가져가서 좌판을 벌이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대전으로 출근을 하는 직장인이나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빼곡히 들어차기 마련인 이 버스에 커다란 나물 보따리를 실어 장에 내다 팔려는 이들과 차장은 종종 실랑이를 벌였다. 어떤 이는 어떻게든 도와주려 사람들을 안쪽으로 밀어내며 할머니와 봇짐을 억지로 사람 사이에 밀어 넣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막무가내로 실으려는 할머니의 봇짐을 빼앗아 차 문밖으로 야멸차게 내동댕이 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야속한 젊은 차장의 행동에 돌아서 눈물을 훔쳤다.

세상은 잔인했고 그럼에도 삶은 살아내야 하는 것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다고 언제나 삶이 비극적인 이야기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대전으로 등교하는 중고등학생들로 이미 가득 찬 버스들은 매번 다음 정거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려는 의지가 있는(?) 한두 명의 학생들을 더 밀어 태우고는 차장이 이들을 몸으로 밀어 넣으며 "오라이"를 외쳤다. 미처 계단을 올라서지 못한 학생들로 인해 아직 문을 닫지 못한 버스를 운전기사는 일부로 좌로 한번 핸들을 돌렸다가 거칠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러면 순간 여학생들이 내지르는 "꺄악" 소리와 함께 왼쪽 창쪽으로 사람들이 밀려 순간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  순간을 노려 노련한 차장은 매번 능숙하게 버스 문을 닫곤 했다.


한 번은 어찌어찌 간신히 한두 명의 학생들을 더 태운 버스가 출발하고 곧이어 다음 정류장에 멈추어 섰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버스의 뒷문이 열리지 않은 채 조용했다.  

차의 문이 열리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 기사님이 차장을 불렀다.


"이양? 이양? 왜 문 안 열어?"


이미 버스 안은 콩나물시루처럼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옴짝 달짝을 못하는 상황이라 모두 이 상황이 파악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화가 난 기사분이 다시 한번 버럭 고함을 치듯 차장을 불렀다.

"이양? 왜 대답이 없어? 이양~~"

그때 버스의 뒷문 쪽에서 어린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이양,..... 저번 정류장에서 못탔는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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